문학46 하루의 기분과 명랑을 위해__박세현의 시 [ 책 소개 ] 시가 충분히 쓰여졌다고 확인할 때 그러면서도 충분히 덜 쓰여진 시가 있다고 머뭇거리면서 쓰는 시. 그런 망설임으로 채워진 시집이다. 출판사는 예고 없이 밀려올 선주문에 대비하고 있다. [ 책 속으로 ] “박세현의 문학은 ‘산상(山上)에 홀로 장치된 기관총’을 닮는다. 총구가 겨냥하는 방향은 설명되지 않는 외로움. 그는 어디에도 속하지 않지만 자신에게도 속하지 않는 청개구리 좌파를 연기한다. 애오라지 자신의 대리인 또는 위증하는 자신의 참고인이다. 속지 않는 자가 방황한다고 했던가. 언어에 스미지 못하고 그는 속절없이 남아도는 잔여 속을 떠다닌다. 외롭고 싶을 때마다 시의 방아쇠를 당겨보는 무망한 끄적거림이야말로 그의 문학이 아니던가.”(뒷표지) “시를 읽으면서 시인의 .. 2025. 3. 24. 그립기만 한 그런 사랑__유수임 시집 그녀가 피아노 앞에 앉은 이유 이 책은 소박 담백한 삶의 이야기가 담겨 있는 유수임의 시집이다. 그녀의 시는 그녀가 살아온 삶의 이력과 현재의 일상을 넘나들면서 그녀만의 솔직한 노래를 부른다. 그 노래는 자신의 삶을 감싸고도는 사람과 시간과 공간의 속에 존재한다. 그것은 짧지 않은 인생을 살아온 삶의 간단치 않은 궤적의 고백이자 자신과 삶 그리고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과 생각의 산물이다. 그 중심에 피아노와 어머니가 있다. 그녀는 시집 앞에서 “이 세상에 혼자라고 느낄 때 피아노에 앉는다”라고 고백한다. 그만큼 피아노와 음악은 그녀의 삶의 한 축이라고 할 수 있겠다. 또한, 유수임은 “나이 들어 피아노 옆에 원고지를 놓고 인생이라는 건반 위에 시의 음표를 그린다.”고 밝힌다. 자신이 스스로 말했듯이 결국 .. 2025. 2. 3. 날씨와 건강__박세현의 시 시집의 제목은 제비뽑기로 결정했는데 이 방식도 나쁘지 않았다. 어떤 의미에서는 [ 시인의 말 ] 그에게 시는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다. 꾸다 만 꿈, 헛꿈, 착각, 웃음 끝에 매달린 울음, 아직 안 주무셨어요? 이런 물음들. 밑 빠진 독에 물붓기, 무단횡단, 틀리게 말하기, 선상반란, 언어가 수습하지 못한 공터, 내란음모, 먼저 가보겠다며 일어선 누군가의 빈 자리, 꿈과 현실의 이음새, 영혼의 노숙, 수유천의 물소리, 그러나 시는 무모하다. 그래서 그는 쓴다. 앞차와의 간격을 조절하기 위해 서행하는 전철 기관사의 운행방식을 참고하면서 쓴다. 그가 쓰지 않아도 다른 시인들이 시를 팡팡 써내면서 시단이 풍성하게 굴러갈 것이 걱정되어 그는 (농담처럼) 쓰기를 멈추지 못한다. 독자가 바야흐로 시인을 위로하는.. 2024. 12. 31. 홀로 두 발로 삼천킬로미터―코리아 둘레길 남파랑길과 서해랑길 이야기(류규형 기행에세이) 코리아 둘레길 남파랑길과 서해랑길을 홀로 두 발로 걸으며... “3,270킬로미터의 시작은 한 걸음부터였다. 자신이 살고 있는 마을 길이라도 일단 걸어보자. 매일 조금씩 거리를 늘려보자. 걷지 못하면 앉게 되고 그 다음에 눕게 된다. 눕게 되면 인생이 끝난다. 건강한 몸과 건강한 정신을 위하여 걸어야 한다.”(작가의 변) 작가의 말이다. 이 책에서는 일상적인 여행기처럼 교통편이나 코스, 먹거리를 소개하지 않는다. 남파랑길과 서해랑길을 혼자 걸으며(97일 중 2일은 길동무와 함께 걸음) 자연과 이야기를 나누고, 그 지역의 얽힌 역사를 짚어보고 잘못된 정책들에 대해 필자의 입장에서 의견을 기술하고 있다. 작가는 이 책을 통해 먹거리와 잠자리로 겪었던 어려움, 장거리 걷기를 하며 몸에 나타나는 통증을 극복하는.. 2024. 10. 29. 풍경과 심경__강세환 시집 현실적인 것과 비현실적인 것 강세환 시인의 신작 시집이 출간되었다. 만 일 년도 안 됐는데 연전에 상재한 또 그만한 분량(521쪽)의 시집을 내놓은 것만 해도 이미 한국 문단의 핫(hot)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물론 문학의 위상을 물리적 분량으로 가늠할 순 없지만 작금의 문학 출판시장에서 보기 드문 사례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비단 외형뿐만 아니라 내적으로도 시인 특유의 ‘열정과 통찰’을 곳곳에서 엿볼 수 있어 작가의 역량을 또 한 번 짐작하고도 남을 것이다. 권두에 실린 작가 인터뷰 ‘고독의 즐거움’에선 시인의 육성을 직접 들을 수 있으며, 10부로 나누어 수록한 총 ‘342편’에 달하는 막대한 분량의 시집을 통째로 목도하게 될 것이다. 이 한 가지만 보아도 시가 지리멸렬한 이 시대에 시가 가히 .. 2024. 10. 25. 영화, 현실과 상상의 클리나멘__작가와비평05__박명진 영화평론집 2000년대 이후 영화를 중심으로영화의 미학적 특징과 이데올로기를 논평하다 2000년대 이후 영화에 나타난 시대적 징후와 사회적 메시지를 규명하기 위해서 이 책은 발간되었다. 보통 영화에 대한 글은 주관적인 감상평이나 배우에 대한 느낌을 보여주는 것에 머물기도 한다. 이 책은 영화가 대중적인 상품임과 동시에 특정 시대의 문제의식을 미학적으로 완결시키려는 예술작품이라는 점을 주목한다. 이 책의 기본 관점은 영화 텍스트가 수동적으로 감상되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객체에 머무르지 않는다. 이 책은 관객이 영화를 찾아 영화관에 가듯이, 영화들이 관객들을 향해 나아가면서 ‘마주침’을 발생시킨다. 영화는 제작이나 상영 당시의 사회상을 직간접적으로 반영하거나 재현하게 된다. 이 말은 영화 텍스트가 당대 사회의 무의식, .. 2024. 10. 11. [[ 정열적인 문학가, 냉철한 사상가, 그리고 11명의 아이를 낳은 어머니 ]] 요사노 아키코, ‘낳는 성’을 말하다 사랑에 목숨을 거는 일 100년 전 일본의 여성해방운동과 출산 시인이자 여성운동가 요사노 아키코와 ‘모성보호논쟁’ 저출생의 시대, 출산의 어려움과 모성의 존재에 대해 다시 사유하게 하는 책이다. 한국 페미니즘의 선두 주자인 나혜석도 영향을 받았다고 하는 근대 일본의 시인이자 여성운동가인 요사노 아키코의 글을 통해 근대 일본 사회의 이상과 현실이 어떻게 중첩되고 충돌하는지 보여준다. 페미니즘과 저출생 등의 문제가 뜨거운 화두가 된 현재이지만 100년 전에도 여성해방운동과 출산은 뜨거운 논쟁거리였다. 그러므로 이 책은 100여 년 전의 과거를 살펴봄으로써 현재와 미래를 생각하는 기회가 될 것이다. 이 책은 요사노 아키코의 수많은 저작 중에서도 평론, 특히 모성론과 출산에 대한 담론에 집중하고 있다. 저자는 .. 2024. 8. 22. 쓸모없는 인간__박세현 소럴 책이 넘쳐나는 시대에 왜 이런 책을 쓰느냐고 물어오는 행인을 붙잡고 ‘사실은 말이지요…….’ 이렇게 혼자 중얼거리는 글이다. 박세현의 전작 ≪페루에 가실래요?≫와 ≪여담≫을 읽은 독자는 읽지 않아도 상관없을 책이다. 이 책은 저자가 쓴 전작의 반복이면서 전작을 읽지 않은 독자들을 위한 요약본의 성격을 가장하고 있다. 일기에다 물을 붓고 잉크를 섞어 함부로 흔들어버린 듯한 그래서 문자보다 잉크 냄새가 진한 책이다. [ 책 속으로 ] “이 소설은 가다가 멈출 수도 있고 무슨 얘긴지 쓰고 있는 필자도 설득시키지 못할 흐름도 있을 수 있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이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를 만들고 자기도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고 한 말이 떠오른다. 은퇴를 선언하고 다시 영화를 만드는 이.. 2024. 8. 8. 시를 소진시키려는 우아하고 상징적인 시도__박세현 시집 박세현 시집 시를 소진시키려는 우아하고 감상적인 시도 이 시집은 시낭독공연의 형식을 가장하고 있다. 가상의 독자와 시인이 같은 장소에서 맞닥뜨리는 상황을 짐짓 리얼하게 연기하는 편집상의 설정이다. 시집이 시의 주거형식이라면 그것의 구조를 재구성하는 이와 같은 작업은 금시초문이지만 나름 색다른 풍문이다. 시 혹은 시의 근사치를 탕진시키려는 시도는 무모하거나 우아하지만 언제나 외로운 선택이다. 이 시집은 순간순간 위조되고 갱신되는 시에 대한 고정된 관념과 새로운 문학이라는 평균적 합의에 섞이지 않으려는 욕망의 고독한 응축으로 읽힌다. [ 책 속으로 ] 시인: (객석 쪽으로 한 발 다가서며) 오늘 제 시집 ‘시를 소진시키려는 우아하고 감상적인 시도‘의 쇼케이스이자 낭독공연에 오신 분들께 잔잔하게.. 2024. 8. 7. 이전 1 2 3 4 ··· 6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