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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시15

날씨와 건강__박세현의 시 시집의 제목은 제비뽑기로 결정했는데  이 방식도 나쁘지 않았다. 어떤 의미에서는 [ 시인의 말 ] 그에게 시는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다. 꾸다 만 꿈, 헛꿈, 착각, 웃음 끝에 매달린 울음, 아직 안 주무셨어요? 이런 물음들. 밑 빠진 독에 물붓기, 무단횡단, 틀리게 말하기, 선상반란, 언어가 수습하지 못한 공터, 내란음모, 먼저 가보겠다며 일어선 누군가의 빈 자리, 꿈과 현실의 이음새, 영혼의 노숙, 수유천의 물소리, 그러나 시는 무모하다. 그래서 그는 쓴다. 앞차와의 간격을 조절하기 위해 서행하는 전철 기관사의 운행방식을 참고하면서 쓴다. 그가 쓰지 않아도 다른 시인들이 시를 팡팡 써내면서 시단이 풍성하게 굴러갈 것이 걱정되어 그는 (농담처럼) 쓰기를 멈추지 못한다. 독자가 바야흐로 시인을 위로하는.. 2024. 12. 31.
풍경과 심경__강세환 시집 현실적인 것과 비현실적인 것 강세환 시인의 신작 시집이 출간되었다. 만 일 년도 안 됐는데 연전에 상재한 또 그만한 분량(521쪽)의 시집을 내놓은 것만 해도 이미 한국 문단의 핫(hot)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물론 문학의 위상을 물리적 분량으로 가늠할 순 없지만 작금의 문학 출판시장에서 보기 드문 사례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비단 외형뿐만 아니라 내적으로도 시인 특유의 ‘열정과 통찰’을 곳곳에서 엿볼 수 있어 작가의 역량을 또 한 번 짐작하고도 남을 것이다.  권두에 실린 작가 인터뷰 ‘고독의 즐거움’에선 시인의 육성을 직접 들을 수 있으며, 10부로 나누어 수록한 총 ‘342편’에 달하는 막대한 분량의 시집을 통째로 목도하게 될 것이다. 이 한 가지만 보아도 시가 지리멸렬한 이 시대에 시가 가히 .. 2024. 10. 25.
시를 소진시키려는 우아하고 상징적인 시도__박세현 시집 박세현 시집 시를 소진시키려는 우아하고 감상적인 시도 이 시집은 시낭독공연의 형식을 가장하고 있다. 가상의 독자와 시인이 같은 장소에서 맞닥뜨리는 상황을 짐짓 리얼하게 연기하는 편집상의 설정이다.  시집이 시의 주거형식이라면 그것의 구조를 재구성하는  이와 같은 작업은 금시초문이지만 나름 색다른 풍문이다.  시 혹은 시의 근사치를 탕진시키려는 시도는 무모하거나 우아하지만 언제나 외로운 선택이다. 이 시집은 순간순간 위조되고 갱신되는  시에 대한 고정된 관념과 새로운 문학이라는  평균적 합의에 섞이지 않으려는  욕망의 고독한 응축으로 읽힌다.  [ 책 속으로 ] 시인: (객석 쪽으로 한 발 다가서며) 오늘 제 시집 ‘시를 소진시키려는  우아하고 감상적인 시도‘의 쇼케이스이자 낭독공연에 오신 분들께 잔잔하게.. 2024. 8. 7.
꽃수레 기도잎__이채현 시집 살아오면서 체화된 신앙의 편린들 시집 ≪꽃수레 기도잎≫은 제1부 ‘깊은 사람이 좋다’, 제2부 ‘사랑지기’, 제3부 ‘숲’, 제4부 ‘님이여’로 총 4부로 구성되어 있다. 각 부를 관통하는 주제는 그분이다. 그분을 향한, 그분에 의한, 그분을 위한. 갈급한 기도 속의 나에서 점점 너에게로 나아가 세계로 확장되어 가는 실천의 사랑이길 이 시집은 전하고 있다. 지은이 이채현의 시는 내면의 진솔한 표현이 특징이다. 특히 신앙생활을 하며 다가왔던 문제들을 시적 형상화로 지음으로써 일상의 익숙함으로부터 생경하게 맞게 될 것이며 이는 미학적 감동을 줄 것이다. 이번 새로운 시집을 낸 이채현 시인의 시들은 ‘어둔 밤 순수한 영혼’이 느끼는 감수성으로 무엇을 간절히 기다리고 있는 듯하다.    발이 부르트고     날.. 2024. 4. 26.
이 단순하고 뜨거운 것__강세환 시집__개인적인 것과 사회적인 것 개인적인 것과 사회적인 것 강세환 시인의 시집 ≪이 단순하고 뜨거운 것≫이 출간되었다. 이번 시집을 보면 개인적이든 사회적이든 시적 대상에 대한 시인의 반복적인 사유(思惟)와 지속적인 열정이 폭발한 것 같다. 그 반복과 열정은 복잡하지만 때때로 단순하고 뜨거운 것이었다. 그것은 이른바 일상적 진실과 당위적 진실 사이에서의 갈등과 충돌과 고뇌와 분노와 반성과 통찰의 자기표현인 셈이다. 그 또한 시인의 시적 사유이며 인식이며 그가 획득한 문법이며 그가 겪은 삶에 관한 심경이며 기록이며 ‘날것’ 그대로 생생한 감수성일 것이다. 이번 시집은 한눈에 보아도 깜짝 놀랄 만큼 개인 시집 네댓 권을 묶어놓은 것과 같고, 한 권의 신작 시집으론 막대한 분량임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등 제1부를 비롯하여 등 제7부까지 무.. 2023. 12. 22.
썸__박세현 시집_하염없음에 대한 기록 하염없음에 대한 기록 시를 쓰는 동안 시인이 만나는 것은 시가 아니라 자신의 공백이다. 여긴가 하면 여기가 아니고 저긴가 하면 저기도 아닌 생소한 곳에서 어색한 생각으로 그는 다시 태어난다. 하염없음은 그러므로 시의 도착점이 된다. 이 시집은 꼭 쓰지 않아도 되었을 듯한 하염없음에 대한 기록이다. 시인이 자신의 시를 지나가는 순간이다. [ 책 속으로 ] 그의 시를 못 본 지 오래다 십년? 더 된 듯하다 잘 나가던 시인이다 오늘은 그가 궁금하다 진정한 시인이라면 흔적 없이 증발되었을지도 모른다고 중얼중얼 여기저기 수소문했더니 그는 잘 살고 있다고 전했다 순간적으로 암전되는 느낌적 느낌! 서가에서 그의 시집을 뽑았다 모르긴 몰라도 그를 다시 읽을 일은 없겠다 健幸을 빈다 ― 전문 썸은 무슨 뜻인가요? (귓속.. 2023. 12. 14.
에르미따(이상규 추억시집) 사라진 것은 아름답다. 그리고 아름다운 것은 사라지고 없다. 문학평론가 변학수 교수는 다음과 같이 이 시집에 대하여 고변한다. 그러면서 다음과 같이 이 책에 대한 소망을 담아 이야기한다. 고뇌하는 시인은 아름답다. 1978년 ≪현대시학≫에 를 발표하고 문단에 등단한 시인에게 지난 2018년은 문단 등단 40년이 된 해이다. 그동안 ≪종이나발≫(첫 시집), ≪대답 없는 질문≫(두 번째 시집), ≪거대한 낡은 집을 나서며≫(세 번째 시집), ≪헬리콥터와 새≫(네 번째 시집), ≪13월의 시≫(다섯 번째 시집), ≪오르간≫(여섯 번째 시집)을 펴낸 바 있다. 이 시집들을 바탕으로 하여 ≪에르미따≫는 탄생하였다. 곧 이상규 시인의 추억시집이다. 시인은 이 추억시집이 마지막이기를 바랐다. 문학과 예술을 더 더렵혀.. 2023. 7. 22.
난민수첩(박세현의 시와 한 편의 롱테이크) 자기 시대를 상실하고 자기 문학의 의제마저 착취되었다면 그는 난민이라 불러도 무방하다 제목이 말하듯이, 이 시집은 시인 자신을 난민의 위치에 둔다. 자기 시대를 상실하고 자기 문학의 의제마저 착취되었다면 그는 난민이라 불러도 무방하다. 어디로 갈 것인가. 무엇을 써도 자기 표절로 끝난다. 새롭게 써도 시효의 벽에 부닥친다. 마이크 꺼진 뒤에서 중얼거림은 시인에게만 들려온다. 이 시집은 평생을 문학에 기대어 살아온 시인이 마주하게 된 난민적 경계에 대한 작문이다. [ 책 속으로 ] 주민증 제시하세요 왜요? 선생님은 무단횡단자입니다 건널목 아닌 데서 건너면 어떡한답니까? 경찰이다 집사람은 두고두고 말한다 당신이 그런 사람이야 [ 출판사 서평 ] “시를 잘 쓴다는 게 가능한 일인가. 시인이 품고 있는 근본적인.. 2023. 5. 9.
엄마, 수국을 보내드릴까 합니다 신은 모든 곳에 가 있을 수 없기 때문에 어머니를 만들었다 누군가를 하늘나라로 떠나보낸 이들은 알 것이다. 그 슬픔과 안타까움, 후회와 회한이 얼마나 큰지. 그 그리움이 얼마나 붉은지. 이 시집은 어머니를 하늘나라로 떠나보낸 후 선연한 그리움과 슬픔으로, 밀려오는 어머니의 삶의 궤적을 자연스럽게 회상하며, 마음에 일렁이는 무늬와 나아가 종교적 흔적을 시적 형상화로 표현하고 있다. 사랑이 참 깊으셨던 어머니. 신앙이 참 깊으셨던 어머니. 일련의 시들에서 어머니의 삶을 통하여 절대자에게로 견고히 나아가는, 어머니의 돌아가심을 통하여 지상 너머의 세계, 곧 영원한 생명으로 새롭게 나아가는, 청유를 담아 기도하는 마음에 닿고자 한다. 그리움 그건. 목도하는 현실의 장에서 어머니의 존재는 시공간 속으로 소멸해버렸.. 2023. 2. 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