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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37

비평의 오쿨루스: 우리 시대의 시와 문화에 관한 에세이(김정남 평론집) 오쿨루스와 같은 심안 : 우리 시대 시와 문화에 관한 비평의식 담아 오쿨루스(ócŭlus). 라틴어로 눈(眼), 시력, 관찰력이란 뜻과 함께 심안(心眼)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또한 로마 판테온의 돔 정상부에 있는 원형의 개구부로 우주를 뜻하는 돔과 함께 태양을 상징한다. 창문이 없는 판테온은 오로지 오쿨루스를 통해 들어오는 빛으로 내부를 밝힌다. 모든 예술은 벙어리라는 노드롭 프라이의 오래된 명언을 떠올린다. 비평은 작품의 입이 되어 무명의 어둠을 밝혀주는 작업이다. 그러기 위해서 오쿨루스와 같은 심안을 얻어야 할 것이다. 작품 속 캄캄한 우주를 밝히는 한 줄기 빛은 비평의 눈에서 나온다고 믿는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평론집의 제목을 ≪비평의 오쿨루스≫라 명명한 것이다. 인생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은 결.. 2023. 7. 18.
분석가의 공포 돛대에 몸을 묶고 사이렌의 노래를 듣는 율리시즈의 부릅뜬 두 눈은, 고통과 희멸에 벌어진 입은, 말한다. 들어라, 가능한 한, 많이, 귀 기울여 들어라. 그러나 빠져들지는 말라. 사이렌에 대항한 율리시즈(오디세우스)의 영웅담은 유명하다. 율리시즈는 사이렌의 노랫소리에 대항하기 위하여 선원들에게는 솜으로 귀를 막고, 자신은 돛대에 몸을 묶은 채 그녀의 노래를 듣고도 유혹을 이겨내어 위기를 넘긴다. 여기서 율리시즈는 비평가에 비유된다. "그런 의미에서 율리시즈는 또한 분석가들의 아버지가 아닐 것인가. 그는 말한다. '들어라, 가능한 한, 많이, 귀 기울여 들어라. 그러나 빠져들지는 말라'고"(28쪽). 비평가는 문학이라는 허상에 귀를 막으면 안 된다. 하지만 그 환상에 빠져들어서도 안 된다. 기둥에 몸을 묶.. 2023. 7. 17.
조선통신사의 길에서 오늘을 묻다: 조선통신사 국내노정 답사기 국내에 남아 있는 조선통신사의 유적과 유산에 대한 최초의 답사기 발간 최근 조선시대에 일본으로 파견된 통신사를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하려는 움직임이 한일 양국에서 날로 커져가고 있다. 일본 측에서 촉발된 이 움직임은 심포지엄과 연구포럼이 잇달아 개최되는 등 등재를 위한 추진 속도가 점점 빨라지고 있다. 이는 조선통신사를 통한 한일문화교류의 의의를 선양하는 뜻 깊은 기획이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유산의 비대칭성이 드러나 문제가 되고 있다. 말하자면 일본에는 조선통신사가 남긴 각종 시문과 필담창화집 등이 많이 남아 있고 유물과 유적지가 잘 보존되어 있지만, 우리나라에는 상대적으로 조선통신사 관련 유물과 유적에 대한 조사가 활발하지 않아 현황파악이 시급한 실정이다. 따라서 적어도 형평성을 유지하고 공동등재.. 2023. 7. 14.
안개사냥 사랑과 죽음 사이에 발 담그고 있는 사람들에게 전하는 메시지 생(生)의 원형질을 찾아가는 젊은이의 절망! 박문구 단편소설집 은 다섯 편의 단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소설가 이순원의 말처럼 “나도 모르게 문학청년 시절로 되돌아가”게 되는 청년 박문구 표 단편소설집 에는, 우리 삶에 대해 깊이 성찰하고 반성하게 하고, 소설 한편 한편마다 펼쳐지는 한순간도 놓칠 수 없는 특유의 긴장감이 이 소설집을 읽는 매력이다. 특히나 “떼술보다 혼술에 집착, 지금도 그 버릇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는 박문구 작가의 소설집을 읽기 시작하면, 왜 이 소설들이 이렇게도 많은 사연을 갖게 되었을까를 이해할 수밖에 없다. 우리들 인생 나날살이가 사랑과 죽음 사이에 발 담그고 있는 사람들에게 전하는 메시지는 무엇일까? 현실과 이상 사.. 2023. 7. 13.
추억의 시, 여행에서 만나다(기행에세이, 사진에세이) 어떻게 살아야 하나, 무엇을 위해 살고 있는가 나는 시가 알려줄 거라 생각했다 오늘도 고독의 바위를 굴리며 시의 산정을 오른다 암호로 이루어진 시 해석은 버려야 할 때 시는 어렵다. 짧은 글 안에, 단어 하나하나마다 의미가 내포되어 있고, 그 의미는 또한 시대적 상황에 따라 달리 해석되기도 한다. 문학 중에서도 가장 까다롭다고 여겨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를 쓰고, 읽는 이유는 그 폭넓은 해석의 가능성과 짧은 글에서 느끼는 무한한 감동 때문일 것이다. 하나하나의 장면을 제시하는 소설과 달리 시는 몇 개의 단어만으로 풍경화가, 이야기가 만들어진다. 그 그림이 수묵화가 되느냐 유채화가 되느냐는, 그 이야기가 러브 스토리가 되느냐 역경에 찬 한 인물의 전기(傳記)가 되느냐는 독자의 상상력에 따라 달라지는 것.. 2023. 7. 11.
여담(박세현 경장편) 시를 응시하는 시인의 태도를 문자로 타이핑하는 유사소설 이 책은 굳이 갖다 붙이자면 에세이픽션이나 오토픽션으로 불릴 수도 있다. 그렇지만 이 소설은 어느 개념에도 사이좋게 부합되지 못한다. 소설이라 규정하기 헐겁거나 까다로운 지점에 텍스트가 걸쳐 있다. 소설을 쓰겠다는 시인 ‘나’는 마지막까지 소설을 한 줄도 쓰지 못한다. ‘나’의 고민은 소설이 아니라 소설을 싸고도는 막과 같은 현실을 또 하나의 픽션으로 바라본다는 데 있다. 소설을 쓰겠다고 중얼거리는 그 자체가 소설의 중심이자 증상이다. 간단히 말해서 이 소설은 시를 응시하는 시인의 태도를 문자로 타이핑하는 유사소설이다. 경장편은 거기에 붙인 가짜 시그니처다. [ 책 속으로 ] 나는 왜 이런 글을 썼는가. 모른다. 모른다는 사실만이 나의 대답이다. 소.. 2023. 5. 15.
난민수첩(박세현의 시와 한 편의 롱테이크) 자기 시대를 상실하고 자기 문학의 의제마저 착취되었다면 그는 난민이라 불러도 무방하다 제목이 말하듯이, 이 시집은 시인 자신을 난민의 위치에 둔다. 자기 시대를 상실하고 자기 문학의 의제마저 착취되었다면 그는 난민이라 불러도 무방하다. 어디로 갈 것인가. 무엇을 써도 자기 표절로 끝난다. 새롭게 써도 시효의 벽에 부닥친다. 마이크 꺼진 뒤에서 중얼거림은 시인에게만 들려온다. 이 시집은 평생을 문학에 기대어 살아온 시인이 마주하게 된 난민적 경계에 대한 작문이다. [ 책 속으로 ] 주민증 제시하세요 왜요? 선생님은 무단횡단자입니다 건널목 아닌 데서 건너면 어떡한답니까? 경찰이다 집사람은 두고두고 말한다 당신이 그런 사람이야 [ 출판사 서평 ] “시를 잘 쓴다는 게 가능한 일인가. 시인이 품고 있는 근본적인.. 2023. 5. 9.
엄마, 수국을 보내드릴까 합니다 신은 모든 곳에 가 있을 수 없기 때문에 어머니를 만들었다 누군가를 하늘나라로 떠나보낸 이들은 알 것이다. 그 슬픔과 안타까움, 후회와 회한이 얼마나 큰지. 그 그리움이 얼마나 붉은지. 이 시집은 어머니를 하늘나라로 떠나보낸 후 선연한 그리움과 슬픔으로, 밀려오는 어머니의 삶의 궤적을 자연스럽게 회상하며, 마음에 일렁이는 무늬와 나아가 종교적 흔적을 시적 형상화로 표현하고 있다. 사랑이 참 깊으셨던 어머니. 신앙이 참 깊으셨던 어머니. 일련의 시들에서 어머니의 삶을 통하여 절대자에게로 견고히 나아가는, 어머니의 돌아가심을 통하여 지상 너머의 세계, 곧 영원한 생명으로 새롭게 나아가는, 청유를 담아 기도하는 마음에 닿고자 한다. 그리움 그건. 목도하는 현실의 장에서 어머니의 존재는 시공간 속으로 소멸해버렸.. 2023. 2. 13.
自給自足主義者(자급자족주의자) 의미의 의미 없음, 언어의 허구성을 탐닉하다 이 시집은 60편의 시와 긴 시집 뒷말이 수록된 박세현 시인의 15번째 시집이다. 박세현의 시는 읽혀지기 위한 쓰기가 아니라 쓰기 위한 시라고 하는 것이 더 옳다. 잘 썼다든가 좋은 시라는 문학적 통념은 그의 시에서 힘을 갖지 않는다. 새로운 의미의 발견이나 발명에도 그는 관심을 두지 않는다. 의미의 의미 없음, 언어의 허구성을 탐닉하는 문장이 시집 전편에 출렁거린다. [ 책 속으로 ] “삼류시인이 아니고는 알 수 없는 비밀이 세상에는 있다 그것이 무엇인지 이제 나는 좀 알 것 같다”(23쪽, 전문) “문학이라는 픽션 안에서 요가를 하듯이, 요가 없이 요가를 꿈꾸듯이, 설명할 수 없는 나의 증상을 설명하면서, 하청업자처럼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다. 아무 뜻 없음.. 2022. 12.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