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것은 아름답다.
그리고 아름다운 것은 사라지고 없다.
문학평론가 변학수 교수는 다음과 같이 이 시집에 대하여 고변한다.
<사라진 것은 아름답다. 그리고 아름다운 것은 사라지고 없다. 그에 반해 도시에서의 집은 허전하고 외로운 “닫힌 공간”이다. “영원히 일어나지 못할 여인을/화폭에 가둔 화가만이 들락거릴 수 있는/닫힌 공간/그 여인은 모두 도시 여자이다.” 이상규가 그려내는 집이라는 공간은 역사의 문턱을 몇 번씩 넘어가는 사회변화로 인해 받은 충격에 대한 내적 반응이다. “미추왕릉”이나 “남성현 고개”, “반구대 암각화” 같은 공간과 이 도회의 소외된 공간은 서로가 얼마나 낯선가? 늘 그렇듯이 역사적 인간은 쓸쓸하다. 왜냐하면 인간이 역사를 만든다지만 역사 앞에서 인간은 영원한 국외자이기 때문이다. 이상규 시인의 농축된 비판적인 역사의식은 이런 “집”에 대한 반응으로서 무의식적 역사기술이라 할 수 있다.>
그러면서 다음과 같이 이 책에 대한 소망을 담아 이야기한다.
<자기 상실의 올가미에 갇힌 시대에 시인의 말대로 “에르미따의 더러운 피”가 우리 독자를 구원해 줄 것이라는 믿음 가득하다. 구원하소서, 에르미따여.>
고뇌하는 시인은 아름답다.
1978년 ≪현대시학≫에 <안개>를 발표하고 문단에 등단한 시인에게 지난 2018년은 문단 등단 40년이 된 해이다.
그동안 ≪종이나발≫(첫 시집), ≪대답 없는 질문≫(두 번째 시집), ≪거대한 낡은 집을 나서며≫(세 번째 시집), ≪헬리콥터와 새≫(네 번째 시집), ≪13월의 시≫(다섯 번째 시집), ≪오르간≫(여섯 번째 시집)을 펴낸 바 있다. 이 시집들을 바탕으로 하여 ≪에르미따≫는 탄생하였다.
곧 이상규 시인의 추억시집이다. 시인은 이 추억시집이 마지막이기를 바랐다. 문학과 예술을 더 더렵혀지지 않도록 절필하기를 바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는 이상규 시인이 남긴 시들(에르미따 등)은 기억해줬으면 하는 바람을 독자를 대신하여 바란다.
이 시집은 552쪽에 달한다.
‘에르미따’는 이상규 시인의 이론과 실존이 유리되어 있음을, 언어와 존재의 불일치를, 시인의 시적 감감과 행동의 불일치를 선언하고 고백하는 선언이기도 하다. 그리고 동시에 시간에 대한 제의적인 절차의 보고서이기도 하다.
이 시집은 이상규 시인의 태생에서 지금까지 자신을 조망하는 미러이미지의 거울이기도 하다.
이 책의 시작에 앞서 이상규 시인은 이렇게 말한다.
시인이 가고자 하는 길은 정말 머나먼 길일까. <머나먼 시인의 길>로 소개글을 대신한다.
<요사이 대부분의 시들이
상처에서 흐르는 피를 손으로
얼굴로 몸으로
마음으로 부비여
검은 먹빛처럼 종이에 찍어낸다.
사나운 들짐승들처럼
시로 언어를 물어뜯어 상처난 시들
더 숭고하고 더 높은 언어로
환기하려는 이 시대사의 부상자들
상처받은 불나방
시대의 아픔과 불행을 시인의
순정과 낭만과 고독으로 전환할 수 있는가
숱한 부조리와 부조리한 사람으로부터
일탈하려는 노력, 언어로는 불가능한 것인가
좌절한 분노와 꾸짖음의 거친 언어 대신
사랑으로 다가가는
시가 가야 할 머나먼 길
조락하는 시대의 슬픔을 번뇌하며
숙성된 길 찾기를 위한
언어로 피워 올린 시의 불길을 피워보자
결코 많은 정답을 가지고 있지 않는
시의 길, 시인의 길은
고난의 능선에 있을 뿐
아직 지치지 않은 역사는
서늘한 바람에 묻어 온다
내 자신의 오래된 추억의 시를 되돌아보며
문단 등단 40년
이상규 추억 시집을 엮었다.
2019.06
<불이재(不二齋) 이상규>
목차
책머리에: 머나먼 시인의 길
<제1편 13월의 시>
사막_15 / 있음_17 / 죽은 나무_18 / 벽과 공간_19 / 살아 있음_20 / 파란 피_21 / 시와 새_23 / 비밀_24 / 연필로 그린 흰 꽃_26 / 청력 장애인_27 / 유천_28 / 마이다스의 손_29 / 시작법_31 / 하루일과_32 / 몸_33 / 꿈_35 / 13월의 시_36 / 따뜻한 나무_37 / 별_38 / 북소리_39 / 저항과 폭력_40 / 어매_41 / 추억_42 / 유성_43 / 햇살과 달빛_44 / 개불알꽃_45 / 도시, 바람만 흔들리고_46 / 모음의 탄생_48 / 늘 누워 있는 여자_49 / 모국어_50 / 남성현 고개_51 / 뒷모습_52 / 미추왕릉_54 / 난청과 이명_56 / 암캐의 외출_57 / 수련별곡_59 / 죽음의 부활_61 / 자작나무와 바람_62 / 몽환, 강이천을 만나_63 / 몽환_65 / 투먼강_67 / 언제부턴가_69 / 바다_70 / 이정표_71 / 유월의 꿈_72 / 남천강_73 / 풍화_74 / 소쇄원 맑음_75 / 큰 장, 서문시장_77 / 서호수_80 / 겨울나무_81 / 율려, 허무_83 / 발비_84 / 끝없는 벌판_85 / 주르첸_86 / 몸의 언어_88 / 표준국어문법_89 / 음양몽설_90 / 가을 햇살_91 / 반구대 암각화_92 / 복숭아 통조림_93 / 먼동 1_95 / 먼동 2_96 / 서녘 바람_97 / 아 고구려_98 / 몸은 원시림_99 / 노을_100 / 자연_101 / 태양_102 / 꽃에 맺힌 이슬방울_103 / 고향_104 / 산_105 / 욕망을 비우면서_106 / 아름다운 모습_107 / 초여름 밤_108 / 바람_109 / 소리 없는 깊은 강자락에서_110 / 세상 그립지 않는 것이 없다_111 / 영선못_113
<제2편 오르간>
도시 사람_117 / 키다리 시인 할배_118 / 춥다_120 / 오르간_121 / 늙음_122 / 손녀, 윤_123 / 안개_124 / 장맛비_125 / 가을 사랑_126 / 정완영_127 / 그리움_128 / 유죄_129 / 영사(詠史)_130 / 땅거미_131 / 전설_132 / 초여름_133 / 산보_134 / 태화강_135 / 이별_136 / 지진_137 / 팽목항에서_138 / 내 몸의 언어는 눈물이다_139 / 항해_140 / 하늘 풍경_141 / 별빛_142 / 말의 죽음_143 / 일몰_144 / 우렛소리_145 / 소년 시대_146 / 대설주의보_147 / 사물_148 / 유령선_149 / 이야기의 나라_150 / 광기의 한국현대사_151 / 가난이다_152 / 눈빛의 축제_153 / 별_154 / 티끌_155 / 촛불 시위_156 / 모딜리아니_157 / 유년_158 / 바다가 세로로 누워 있다_159 / 산책_160 / 하노이_161 / 해안선_162 / 김춘수_163 / 버드나무_164 / 기다림_165 / 봄기운_166 / 풍경_167 / 충돌_168 / 나목_169 / 죽음의 교신_170 / 눈물_172 / 낙하_173 / 강진_174 / 호치민 시티_175 / 차당실_177 / 도리원 삼산 마을_178 / 홍매화_179 / 바다 꽃_180 / 징기스칸_182 / 머리_183 / 긴 노래_184 / 제주 바다_185 / 일상_186 / 눈 내리는 삿포로_187 / 북소리_188 / 2017년 2월 14일 하노이_189 / 밤안개_191 / 주술_192 / 침묵의 아침_194 / 봄날은 간다_196 / 봄 풍경_197 / 침묵_198 / 다랑논_199
<제3편 거대한 낡은 집을 나서며>
불온성 없는 세상 1_203 / 불온성 없는 세상 2_205 / 악의 축_207 / 종소리_208 / Memento Mori_209 / 조화_210 / 레비스트로스_211 / 팝콘_213 / 첫눈_214 / 전투기와 여치_215 / 분할_216 / 이론은 잿빛이다, 동무여_218 / 눈이 내리는 날_219 / Stat rosa nomine, nomina nuda tenemus_220 / 삼랑진 역에서_221 / 어린 시절 체벌 받았던 기억_223 / 사족_225 / 고운사의 우화루_226 / 비가 오는 날_227 / 끝없는 이별_229 / 새는 비난받지 않는다_231 / 아름다운 날들 되세요_233 / 작은 언어 바구니들_234 / 지난밤 꿈에_236 / 관습_237 / 바닷가 유곽에서_238 / 메콩강, 하노이_239 / 성 쥬네_241 / 시작(始作)_242 / 순간의 겨울 밤풍경_244 / 아내와 의자_245 / 정원_247 / 지하철_249 / ≪활과 리라≫를 읽으며_250 / 바람에 밀려가는 새가 되리_252 / 가슬갑사_254 / 시인의 담배연기_256 / 나의 사랑은 식민지로다_258 / 그리움_259 / 남해금산_260 / 여수기행_261 / 청주로 떠나는 고속터미널_263 / 유천강가에서_264 / 들꽃마을_265 / 거대한 집을 지으며_267 / 닫친 거대한 집_269 / 거대한 집을 나서며_270 / 거대한 집_272 / M. Basquiate의 집_273 / 낡았으나 정겨웠던 옛집_274 / 나의 거대한 집에 대한 연민_276 / 이 세상에 안 씹히는 게 없다_277 / 텅빈 집_278 / 축제의 날_279 / 적멸보궁(寂滅寶宮)_280 / 변하지 않는 세월_281
<제4편 헬리콥터와 새>
알리바바와 사십인의 도둑_285 / 동경만_287 / 세대교체_288 / 그것이 살아 있다는 것이다_289 / 선과 경계_290 / 자꾸 허기가 진다_291 / 동심과 달빛_292 / 선(線)_293 / 조지 포먼과 죠프레져와 무하마드 알리_294 / 초코렛_295 / 풍요제의_296 / 슬픔은 면역성도 없는가 봐_297 / 새와 주술_299 / 세월의 눈금_300 / 새들의 이야기_301 / 바람과 이별_302 / 고해성사_303 / 새_304 / 은행잎_305 / 아픔_306 / 새벽_307 / 희망_308 / 동심을 따라 오는 달빛_309 / 돌고래의 노래_310 / 순환_311 / 동일성_312 / 겨울의 인상_314 / 반역의 방식으로_316 / 인연_318 / 한반도의 아침은 늘 그곳에서 시작된다_319 / 천사의 옷을 입은 언어_320 / 동전의 달_321 / 낯선 도시사람들_323 / 영암사지에서 남명선생을 만나다_324 / 과식은 늘 기분을 엄청 상하게 한다_326 / 비행_328 / 새와 달_329 / 언어는 바람이다_330 / 한 마리의 새의 죽음_331 / 헬리콥터와 새_332 / 이중자아_333 / 유두날_334 / 새와 뿔_336 / 주막과 레스토랑_337 / 새가 날아와 뱃전에 머리를 부디치네_338 / 반복 혹은 윤회_339 / 사물과 언어의 불일치의 용서_341 / 나사렛 사람들의 발자국_342 / 그녀가 오늘 또 코르셋을 벗어 던지다_344 / 품위 있는 위선으로_345 / 포항만에 버티고 서있는 원효에게_346 / 먼 그리움_348 / 포항역전에서_349 / 굴뚝새_351 / 줄당기기_352 / 선풍기_353 / 10월 수족관 바다를 바라다보며_354 / 초겨울의 노래_355 / 시론_357 / 콩타작_358 / 남문시장 청소부 강씨_361 / 백목련_362 / 토정비결_363 / 연습 2_364 / 백마강가에서_365 / 구름을 위한 관찰_366
<제5편 대답 없는 질문>
길바닥에 버려진 신문지 조각_369 / 소매치기_370 / 북 치는 원숭이_371 / 소시민의 하루_373 / 회색 때가 오른 서울 공화국_374 / 도시의 노래_376 / 남산동 4구 2482번지_377 / 닭발_378 / 이화령 고개를 넘으며_379 / 저수지가 보이는 아파트_380 / 산그늘_382 / 장미빛과 저녁노을_384 / 들국화_386 / 우리 다같이 모여 살면서_387 / 인화_389 / 오즈의 마법사_390 / 편지 (1)_391 / 편지 (2)_392 / 편지 (3)_393 / 편지 (4)_394 / 편지 (5)_396 / 와우정사 풍경_397 / 개똥살구_398 / 풀잎과 사람들의 비 맞는 태도_399 / 우리들의 언어_400 / 전쟁동이_401 / 한해를 보내며_402 / 안경 쓴 얼굴_403 / 장다리무우 꽃잎_404 / 들소_405 / 기둥 사이에 끼여 있는 달과 오골계_406 / 애장터_407 / 똥개 개새끼_408 / 미루치야 꽁치야_409 / 허기진 시대_411 / 대통령찬가_413 / 팻싸움_415 / 피사리_417 / 팔보구슬_419 / 차당실전설_421 / 검정고무신_422 / 모심기노래_423 / 대답없는 질문_424 / 구름을 잡으려 눈뜨면 바람이 잡히고_430 / 1. 역류천_430 / 2. 여근곡_431
<제6편 종이나발>
그림자_435 / 여름밤_436 / 십자매_437 / 종이나발_438 / 인생_439 / 겨울은 가고_440 / 눈_441 / 6.25_442 / 공원에서_443 / 무죄_444 / 단상_445 / 비엔나 숲속의 이야기_446 / 기우제_447 / 안개_448 / 초겨울 어머님께 드리는 글_449 / 봄_450 / 산비둘기_451 / 승선_452 / 이별_453 / 기일_454 / 문둥북춤_455 / 가을에 내리는 비_456 / 칼싸움_457 / 동화_458 / 늪_459 / 폭포_460 / 월야_461 / 요금별납_462 / 해선장에서_463 / 막달라 마리아 혹은 나의 어머님_464 / 도시_465 / 살아 있는 곳_466 / 고산식물_467 / 바보야_468 / 아단산성 (1)_469 / 아단산성 (Ⅱ)_470 / 뱀과 거북_471 / 처용_472 / 아도를 만남_473 / 바소(婆蘇)_474 / 탈놀음_475 / 영천 주남들_476 / 족보_477 / 노예_478 / 판화_479 / 벽화 (Ⅱ)_480 / 강쟁이 다리쟁이_481 / 골목길_482
<제7편 에르미따>
에르미따_485
에르미따 1_485 / 에르미따 2_486 / 에르미따 3_488 / 에르미따 4_489 / 에르미따 5_490 / 에르미따 6_492
1953_494
1. 추억_494 / 2. 전쟁동이_496 / 3. Great America_499 / 4. 나의 국민학교 동창생 ‘오태식’_501 / 5. 사하라 태풍_503 / 6. 새벽종이 울렸네_506 / 7. 맥아드 장군_509 / 8. 세월 변했지_513 / 9. 변증법적 논리_516 / 10. 그래도 니는 내핀이제_518 / 11. 삼풍백화점 붕괴 사건_520
장정일의 햄버거_523
1. 장정일의 순교_523 / 2. 장정일과 햄버거_524 / 3. 장정일과 쉬인_524 / 4. 장정일과 삼중당문고_525 / 5. 추락하는 청춘_526 / 적막_529 / 포항 밀복 횟집_530 / 주문진 어항_532 / 바람에_533 / 헬리콥터_534 / 부산 감만 항구에서 _535
적막_529 / 포항 밀복 횟집_530 / 주문진 어항_532 / 바람에_533 / 헬리콥터_534 / 부산 감만 항구에서_535
나의 시론: 불편한 나의 시와 시론_이상규
구원하소서, 에르미따여_변학수(문학평론가, 경북대학교 교수)
지은이 이상규
1953년 경북 영천 출신으로 1978년 ≪현대시학≫ <안개>로 시인 추천, ‘낭만시’ 동인, 시집으로 ≪종이나발≫(그루), ≪대답 없는 질문≫(둥지), ≪헬리콥터와 새≫(고려원북스), ≪거대한 낡은 집을 나서며≫(포엠토피아), ≪오르간≫(지혜), ≪13월의 시≫(작가와비평), ≪불꽃같이 굴러가는 낙엽≫(글누림)이 있다. 소설로는 ≪포산 들꽃≫(작가와비평)이 있으며, ≪이상화 시의 기억공간≫(공저, 수성문화원), ≪이상화 문학전집≫(경진출판)이 있다. ≪100년의 문학용어사전≫(2008, 아시아) 편찬고문, 겨레말큰사전 편찬이사를 역임하였다.
한국문학예술상 작품상(포스트모던, 2006), 제18회 한국문학예술상 특별부문(한국문학예술진흥회, 2015), 매천황현문학상 대상(2017, 한국지역문인협회).
sgl5117@naver.com
도서정보
[도서명] 에르미따: 이상규 추억시집
[지은이] 이상규
변형 국판(135×205) 양장 / 552쪽 / 값 30,000원
발행일 2019년 06월 30일
ISBN 978-89-5996-586-1 03810
분야: 문학>한국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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