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인 것과 사회적인 것
강세환 시인의 시집 ≪이 단순하고 뜨거운 것≫이 출간되었다. 이번 시집을 보면 개인적이든 사회적이든 시적 대상에 대한 시인의 반복적인 사유(思惟)와 지속적인 열정이 폭발한 것 같다. 그 반복과 열정은 복잡하지만 때때로 단순하고 뜨거운 것이었다. 그것은 이른바 일상적 진실과 당위적 진실 사이에서의 갈등과 충돌과 고뇌와 분노와 반성과 통찰의 자기표현인 셈이다. 그 또한 시인의 시적 사유이며 인식이며 그가 획득한 문법이며 그가 겪은 삶에 관한 심경이며 기록이며 ‘날것’ 그대로 생생한 감수성일 것이다.
이번 시집은 한눈에 보아도 깜짝 놀랄 만큼 개인 시집 네댓 권을 묶어놓은 것과 같고, 한 권의 신작 시집으론 막대한 분량임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광장이 다시 광장이 되기 전에> 등 제1부를 비롯하여 <페이스메이커> 등 제7부까지 무려 300편이 실려 있으며, 제2부 ‘느린 산책길’ 등 산책 시편과 제5부 변산 시편 등 광폭의 시적 행보를 보면 그 시적 여정을 곳곳에서 또 맞닥뜨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 2백자 원고지 약 170매 분량의 작가 인터뷰도 책머리에 수록되어 있다.
[ 시인의 말 ]
시는 삶과 또 어떤 시적 대상과 부딪칠 때마다 새나오는 분비물과 같은 것이다. 그럴 때마다 시는 영감보다는 사색과 고뇌에 가까울 것이다. 그리고 또 삶을 살아내는 것도 결국 삶과 부딪치는 것과 다름없을 것이다. 그렇게 부단히 부딪칠 때마다, 살아낼 때마다 시가 ‘물밀듯이’ 온 것 같다.
이 단순한 반복과 복잡한 사유로 인해 시가 왔다. 그리고 그 어떤 것과 부딪칠 때마다 겪은 인식이 또 시를 ‘쓰는’ 기쁨이 되었을 것이다. 알베르 카뮈는 “사랑하는 대상에 대해 말할 때 가장 좋은 방법은 조용히 말하는 것”이라고 하던데 나는 아직도 부족한 게 많은 것 같다.
[ 책 속으로 ]
<억새의 시간>
바람 부는 날 고개 한번 가로저어 보는 것
강가에서 서성이다 돌아서는 것
길고양이 울음소리에 귀 기울이는 것
얼굴 맞대고 사진 찍는 사람 앞에서
한 번 더 몸을 흔들어보는 것
내 등 뒤에서 오줌 누던 저 인간을
오줌 줄기까지 짐작하게 하던
미친!
어쩌다 남의 통화소리 엿듣다 마는 것
시 한 줄 얻으러 온 사람 지켜보는
물소리 듣고 수량 가늠하는 것
꽉 잡고 있던 오늘 저녁노을 놓아주는 것
풀뿌리 채 쑥 뽑아 던지는 것
구두 한 짝 휙 집어던지는 저 미친 것
구두 한 짝 더 집어던지는…
평정심으로 강 건너 언덕 바라보는 것
조는 듯 잠시 고개 떨어뜨리는
흔들릴 때 한 번쯤 더 흔들리는 것
한번쯤 바닥에 드러눕고 싶을 때도 있다는 것
네 손 잡고 싶을 때도 있다는 것!
<봄밤의 잡생각>
강아지를 길러야 하나
고양이를 길러야 하나
고양이를 보면 고양이를 길러야 할 것 같고
강아지를 보면 강아지를 길러야 할 것 같다
그러나 아무것도 못하고 산다
물소리를 들어야 하나
빗소리를 들어야 하나
그래도 나는 또 고양이와 강아지를 생각하며
고양이를 길러야 하는지
강아지를 길러야 하는지 생각한다
당신의 말을 믿어야 하는지
당신의 말을 잊어야 하는지
칼을 들어야 하나
펜을 들어야 하나
이럴 땐 이렇게 분명하지 않는 내 생각이 좋다
이렇듯 단호하지 않는 내 생각이 좋다
이렇게 미온적일 때도 좋다
오죽하면 이런 잡생각에 빠질 때가 좋다
<서울로 가는 길>
1.
공주 방향 ‘부여 백제 휴게소’에 말을 세워두고
옛적 어느 군졸처럼
두 팔을 벌려 활 쏘는 시늉이라도 하고 싶었다
적을 향해 똑바로 날아가지 못해도
적을 향해 시위를 마음껏 당기고 싶었다
당겨!
마지막 한 발은 하늘을 향해 꼭 날리고 싶었다
결코 되돌아오지 않을 것!
자판기 커피 한 잔 뽑아들고 마셔라!
부어라!!
부여라는 곳에서부터 다시 백제라는 곳에서부터
오직 서울을 향해 일로 전진해야 할 것이다
결코 되돌아오지 않을 것!
2.
여기서 저기서 상경한 자들의 함성이 들린다
거친 들녘 건너 태산 넘어
그들의 함성은 태산을 무너뜨리고 들녘을 가로질러
결코 되돌아오지 않을 것!
태산이 돌아앉아 있어도 들녘을 다 파헤쳐서라도
봉준(琫準)이처럼 가자
차라리 태산이여 들녘이여 그들의 함성을 들으라
빗방울 같고 물방울 같은 그들의 소리를 들으라
그들의 소리를 한번만 들어보라
오죽하면 빗방울이 모여 함성 같은 폭우가 되어 태산을 무너뜨리겠느냐
오죽하면 물방울이 모여 함성 같은 큰물이 되어 들녘을 파헤치겠느냐
되돌아오지 않을 것!
되돌아가지 않을 것
[ 출판사 서평 ]
시를 향한 강세환의 ‘이 단순하고 뜨거운 것’은 결코 단순하지 않다. 오히려 그 지속적인 반복과 열정과 사유 때문에 복잡할 것이다. 또 그의 시가 이른바 문학 개인주의보다 문학 사회주의에 가깝다는 것도 단순함보다 어떤 복잡한 열정과 연관이 있을 것이다. 시인이 근 1년 만에 제출한 이 문학적 결과물도 결국 반복적인 사유에 의한 열정과 집중력 때문일 것이다.
또 시가 아무리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것이라 해도 그의 시에서는 사회적인 사유를 하나 더 추가해야 될 것만 같다. 사회적 현안이 개인적 과제보다 우선순위에서 밀리게 된 시대에, 더 이상 시가 읽히지 않는, 이 난감한 시대에 ‘이 단순하고 뜨거운’ 강세환 시인의 신작 시집인 텍스트가 독자들의 가슴에도 무언가 다시 한 번 뜨겁고 단순한 것이 되기를 바랄 뿐이다.
[ 차례 ]
[작가 인터뷰] 시에 대한 반복적인 사유와 열정
제1부
광장이 다시 광장이 되기 전에/ 이런 근현대사/ 다시, 거울 앞에서/ 나의 담론/ 살아가는 법/ 그곳에 누가 살고 있을까/ 망중한/ 풀에 관한 편견/ 그게 그거다?/ 어떤 픽션 1/ 삼시세끼/ 그때 이런 일이 있었다/ 오늘 하루만 돌아본다면/ 광장의 소문/ 목소리의 변화/ 좀 다르게/ 어느 시인의 옆모습/ 이 세상에 가벼운 것은 없다/ 소문과 소식의 관계/ 이 꽃 한 송이/ 저 담장을 넘은 사람은 없다/ 그 머나먼 곳/ 고요한 아침의 나라/ 꽃 한 송이 이후/ 태평가 1/ 태평가 2/ 태평가 3/ 태평가 4/ 태평가 5/ 이 길을 더 걸어야…/ 나 혼자 지하철에서/ 누구 없소?/ 둘이서 또 지하철에서/ 한 잔 혹은 한 잔 더/ 송구영신/ 어느 1인의 입장문/ 어렵지 않은 일 1/ 어떤 의식의 흐름/ 그가 떠난 뒤 그의 이름을/ 광장에서/ 1970년대 풍의 금지곡/ 남아 있는 것/ 죽(粥)
제2부
오늘의 시/ 오후 2시에서 3시 사이/ 느린 산책길/ 쓰는 기쁨/ 사십일만 칠천 원/ 산책 유감/ 헝클어진 머릿결/ 향호리 호수에 관한 심경/ 어떤 소문/ 이젠 됐다고?/ 상계 근린공원 벤치에서/ 자정이 넘은 시각/ 더 느린 산책길/ 말없이 걷는 길/ 소소한 걸음/ 이 겨울 늦저녁/ 도봉산 물소리 듣기·속편/ 중랑천 물소리 듣기 1/ 과거가 되기 전/ 한파 속 산책/ 길 잘못 든 하산 길/ 침묵만 있어도 괜찮은/ 우두커니/ 폭설 속 산책/ 이상한 호숫가/ 아주 가끔 꿈결/ 소요산 홍두깨 손칼국수집/ 밤길 걷기/ 밤이 깊었나/ 봄밤 산책/ 노래 한 곡 자작하다/ 걸음 멈추게 하던 산책길/ 쓴웃음/ 길을 걷는 자는 머물지 않는다/ 혼자 걷는 이유/ 폭포의 일생/ 돌/ 소요산 돌다리 위에서/ 허공에 기댈 때가 있었다/ 길 위의 뜬 길/ 산책 이후/ 눈 속의 부연동/ 시 쓰다만 시/ 서쪽보다 더 먼 서쪽/ 아직 가보지 못한 곳 1/ 아직 가보지 못한 곳 2/ 뒤돌아보지 않는/ 단순한 삶/ 안 보이던 산책길/ 흐르는 물의 수심을 생각하다/ 수인사/ 빈속의 느낌/ 숲속 작은 도서관 근처/ 내가 산책보다 조깅하는 이유를 아무도 모를 거야/ 어렵지 않은 일 2/ 어렵지 않은 일 3/ 어렵지 않은 일 4/ 가지 않은 길/ 어렵지 않은 일 5
제3부
11번 마을버스/ 겨울들판 위의 야간열차/ 억새의 시간/ 나무가 아닌 것들/ 속절없이/ 그곳에서/ 시보다 더 먼 곳도 있다/ 액자 속의 시 한 구절/ 큰 악수/ 밤잠 설친 시/ 아는 게 없는/ 낮도깨비/ 시 앞에서/ 마라톤 타자기와 1박/ 폭포의 고요/ 새벽 네 시의 시/ 누가 내 시를 읽었을까/ 사랑의 노래/ 오늘 저녁 빗줄기 헤아려보는 게 몇 번째?/ 사막 한가운데/ 마오리 소포라/ 우이암을 위하여/ 뒷담/ 낡고 시든 것/ 시인의 아내/ 모래 속에 시를 묻다/ 웃음은 어디서 오는가/ 자작나무 앞에서/ 시의 힘/ 하루 종일 이 시어 하나 때문에/ 천상병을 생각하다/ 광야에서/ 명함 한 장/ 그런 거 말고!/ 시인의 술집/ 말없는 의자/ 2021년 초봄 상계역 근처/ 외로운 낙서/ 돌미나리의 침묵/ 어제와 오늘 사이/ 뻑뻑한 하루/ 문자 한 줄/ 낮술 한 잔/ 안 보이는 과거
제4부
일장춘몽/ 오늘 만났던 당신 1/ 오늘 만났던 당신 2/ 7호선 전동차/ 대전역 블루스/ 시는 깊은 밤에 쓰자/ 떠돌이의 노래/ 무서운 나이/ 귀를 만지작거리다/ 이마의 잔주름/ 엔터키 탁 치는 재미/ 착한 c 편의점/ 어느 마라토너의 근황/ 탁발/ 적막/ 역린/ 그들을 한번씩 방문하리니/ 제발 울지 말아요/ 나는 당신을 잘 모르고/ 강릉행 밤기차를 타고/ 마들역 지하상가 수선집/ 새벽 두 시의 전화/ 중국 고사를 읽다가/ 울음이 있던 곳/ 생태학적 문제/ 불화를 극복하는 방법/ 노란색 넥타이/ 마지막 한 걸음까지/ 허공에 피는 꽃/ 찐 인사/ 차마 잊고 살 수 없던 것/ 먼 길/ 문상/ 이 세상에서 가장 낮은 곳/ 오이도/ 외출 전 기쁨/ 당신이라는 환상/ 먼 바다 끝에서/ 어쩌다 나는/ 족구 구경/ 작별 인사를 겸한 어느 기도문/ 수목장/ 삽질/ 페르시아 왕자/ 아버지의 길/ 나의 시선을 사로잡던/ 우울증 진단 키트/ 노원역 3번 출구/ 사랑의 뿌리 2/ 따뜻한 쪽지 한 장/ 그는/ 기억에 없는 과거도 있다/ 이름 떠오르지 않을 때/ 소년 전사들을 위하여/ 피 끓던 젊은 혼백이여/ 열무김치 참관기/ 텅 빈 무대에서/ 다시 서호에서/ 폭우 쏟아지던 밤/ 먼 나라 이야기/ 먼 곳
제5부
소금 창고 앞에서/ 안개 속 선유(仙遊)/ 채석강/ 낙숫물 혹은 내소사의 고요/ 낯선 서해 파도소리/ 어렵지 않은 일 6/ 모항에서/ 안개의 색/ 안개의 끝/ 안개의 꿈/ 안개의 삶/ 물밀 듯이/ 한물 간 물건/ 서울로 가는 길/ 애 쓰는 나무/ 해변의 술집에서/ 섬에 대한 어떤 궁금증/ 안개 속 회색인/ 안개 속 회색인 이후/ 달빛과 함께 춤을/ 적요(寂寥)/ 삶의 한가운데/ 섬/ 내 발바닥은 기억할까?/ 적벽의 시/ 씨감자만한 몽돌/ 선유도 기도등대에서/ 안개 시편/ 당신과 당신 사이/ 선유도 선녀탕/ 서해 밤바다
제6부
어떤 유언/ 완도 해변을 생각하며/ 버스킹 시/ 봄비 내리는 호프집에서/ 문학잡지에서 만났던 시인/ 노트북 앞에서/ 이 말을 전하기 위해/ 마음의 상처/ 시 읽는 사내/ 강으로 갔다/ 어둠의 집/ 계단을 오르내리며/ 월간 문학사상/ 흘러간 노래/ 어둠의 시/ 깊은 밤 시를 읽으며/ 취중 담소/ 나를 버릴 줄 알아야/ 시의 끝/ 북아메리카 인디언의 어록/ 망각 속의 추억/ 김지하를 생각하다/ 시밖에 모르는 것/ 퇴직 후 한 두어 해 동안/ 무제 시편/ 초겨울의 뒤쪽/ 시 쓰는 자의 독백 1/ 돌아보던 꿈/ 꿈자리 특집/ 봄이 왔다 가는 중/ 봄밤이다/ 봄밤의 잡생각/ 저녁노을과의 관계/ 꿈밖에서/ 봄 편지/ 신록의 느낌/ 어떤 담소/ 늙은 떠돌이의 독백
제7부
이 노래 끝나면/ 페이스메이커/ 낮고 깊은 곳/ 세이브존 구둣가게에서/ 구두 뒷굽이 닳아서/ 금계국에게/ 고등어구이/ 섬의 끝/ 마차진 무송대(茂松臺)/ 더 먼 곳에 간다 해도/ 시는 쉽게 써야/ 폭우/ 의정부 호장교 밑에서/ 돌아서는 것도 시인의 일/ 모자 쓴 시인과 함께 걷던/ 왕초보의 하루/ 대충 눈인사 정도 하고 지나가면 될 것/ 일인칭의 시/ 앞의 시에 대한 변명/ 배곧 문학회에서/ 오늘밤 못 다한 말을 이렇게라도/ 사람의 일이라는 것/ 박수근을 생각하다/ 내 마음속에 그어놓은 무수한 금들을 어떻게 할 것인가
[ 지은이 강세환 ]
시인.
강원도 주문진 출생. 1988년 ≪창작과비평≫ 겨울호를 통해 작품 활동 시작함. 시집으로 ≪아침 일곱 시에 쓴 시도 있어요≫, ≪다시, 광장에서≫, ≪김종삼을 생각하다≫, ≪시가 되는 순간≫, ≪시인은 무엇으로 사는가≫, ≪면벽≫, ≪우연히 지나가는 것≫, ≪앞마당에 그가 머물다 갔다≫, ≪벚꽃의 침묵≫, ≪상계동 11월 은행나무≫, ≪바닷가 사람들≫, ≪월동추≫ 등 12권과 산문집 ≪시의 첫 줄은 신들이 준다≫(전 2권) 등 있음.
[도서명] 이 단순하고 뜨거운 것
[지은이] 강세환
[펴낸곳] 경진출판
변형국판(140×210) / 520쪽 / 값 30,000원
발행일 2023년 12월 20일
ISBN 979-11-92542-72-0 03810
분야: 문학 >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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