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에서 농익은 목가적 감성과 역사적 서사
소박하면서 꾸밈없는 서정의 감성을 표현한 시집
소금실은 시인의 고향에서도 가장 변방에 있는 산골 오지이며 동학대장 전봉준의 할머니와 젊은 나이에 요절한 전처의 묘지가 있고 그가 수년간 머물렀다고 회자되는 곳이다. 시인은 동학대장 전봉준의 흔적을 찾고자 소금실을 찾아가 보았지만 무료한 발걸음이었다. 하지만 지금도 그곳은 시인의 마음에 늘 그리운 곳으로 남아 언제라도 그곳에 가면 전봉준의 삶의 궤적을 만날 수 있다.
시인은 전북 정읍에서 태어나 다양한 경력을 갖고 있다. 대학시절을 민주화라는 빛을 갈구하고 정학에 처해지고 포항제철에 입사해서는 고졸과 대졸의 학력격차축소개선작업에 대학을 졸업했음에도 불구하고 앞장섰다. 그렇듯 시인은 다양하고 독특한 삶의 여정을 거쳐 현재는 고향 정읍에서 환경운동에 전념하고 있다. 그의 이러한 삶의 궤적이 없었다면 이 시집은 발간하기 쉽지 않았을 것이다.
이 책은 고희에 접어든 시인이 늦둥이로 등단한 이후 처음으로 내 놓은 시집이다.
그의 시들은 어렵지 않다. 현학적 표현을 삼가려는 그래서 쉬운 언어로 감성을 끌어내고자 하는 노력의 흔적이 뚜렷하게 나타난다. 그는 시를 쓰는 것으로 인생의 여정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그는 시인으로 불리어지는 것에 대해 부끄럽지 않은 시를 쓰고자 한다.
총 4부로 구성된 시집은 제1부 물고기의 침묵, 제2부 나는 늘 반달이었다, 제3부 사랑할 게 많은 세상, 제4부 소금실의 그리움 등 110여 편이 실려 있다. 많은 꽃들과 나무, 정읍 주변의 지명, 동학농민혁명의 발생지인 정읍의 역사적 인물, 배경을 이룬 장소까지 다양한 소재들이 시로 승화되고 있다.
시인은 시를 쓰기를 남은 삶의 가장 큰 과제로 삼은 것 같다. 그의 다양한 삶이 폭넓은 시의 영역으로 자리매김 하기를 바란다.
[ 책 속으로 ]
<꽃 피는 날의 서약>
꽃이 피는 날엔 헤어지지 말자.
헤어지기 좋은 날이라 해도
피는 꽃마저 아픈,
꽃이 피는 날엔
내 곁에 그대가 있기를.
꽃이 피는 날엔 떠나지 말자.
떠나기 좋은 날이라 해도
피는 꽃마저 슬픈
꽃이 피는 날엔
그대 곁에 내가 있으리.
꽃이 피는 날엔 서로 곁에 있자.
곁에 있는 시간이 짧아도
피는 꽃마저 힘든
꽃이 피는 날엔
꽃잎처럼 우리 함께 곁에 있자.
<그리운 소금실>
지금실 떠나 어린 딸들 손잡고
구절초 고개 넘어가는 곳.
할머니 땅에 묻고 아내마저 보낸
산속에 갇힌 산새들만 머무는 곳,
그리운 소금실.
같이 울어줄 사람 있으랴.
같이 토닥거릴 사람 있으랴.
초야에 꿈 내리고
들 산에 바깥일 맡기고
그냥 그렇게 살고 싶고
큰바람 소리 높고
깊은 계곡 물소리 세상으로 내모니
내 어디 쉴 수 있으랴.
내 어찌 마다할 수 있으랴.
황토를 닮은 피, 뛰는 심장
두승산에 천태산에 던지리라
갑오의 분노를, 사발의 언약을.
<사랑할 게 많은 세상>
사랑할 게 많은 세상인데
나를 던져 살펴보면
나와 떨어져 지켜보면
참으로 사랑할 게 많은 삶인데
길을 묻는 이를 사랑해 보았는가
무거운 짐을 든 이를 사랑해 보았는가
주인 잃은 강아지를 사랑해 보았는가
비틀거리는 아우성을 사랑해 보았는가
별을 달겠다고
면류관을 쓰겠다고
우뚝 서 보겠다고
수상한 세월을 참아온 발자취
사랑할 게 많은 세상이란 걸
늦게라도 알았으면 다행이지
흩어진 돌멩이 하나,
담벼락 타고 오르는 능소화나무,
반년을 땅속에 묻고 사는 산나리,
익숙한 일상의 시간 속 사람들
나를 비워 담아보면
나를 낮춰 굽어보면
사랑할 게 많은 세상인데
참으로 사랑할 게 많은 날들인데.
[ 시인의 말 ]
늦은 나이에 문단에 나서 시를 쓴다는 것은 나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행복한 일이다.
시인으로 호칭을 받는다는 것 또한 벅찬 일이다.
느낌과 감정의 이입으로 교감이 있는 시를 쓰고 싶다.
쉬운 언어와 낱말로 편하게 읽을 수 있는 시를 쓰고 싶다.
일상의 생활에서 가까이 보고, 듣고, 말할 수 있는 시를 쓰고 싶다.
세상의 많은 것이 시를 통해 다듬어지고 정돈되는 시를 쓰고 싶다.
[ 차례 ]
꽃피는 날의 서약
제1부 물고기의 침묵
버려야 할 유산/ 사는 것은 택함이다/ 노인예찬/ 물고기의 침묵/ 세월연습/ 오지 않는 새/ 참회/ 초록에 겨운 날/ 기다리는 삼백일/ 바람 한 점/ 나무들이 커지면/ 세제길 윌은치/ 꽃처럼 웃는다/ 슬퍼진 사랑/ 푸르름이 쉬는 시간/ 꽃과 이슬/ 오월의 개구리/ 아름다운 날/ 한 그루 나무/ 가지 못한 길/ 불빛의 꿈/ 4월의 이별/ 나의 까미/ 봄의 부활/ 꽃짐/ 어루만져 녹여야/ 한 번이라도/ 새벽의 다짐
제2부 나는 늘 반달이었지
나는 늘 반달이었지/ 비와 바람/ 꿈꾸는 꽃/ 비를 기다리는 건/ 때가 되면/ 수선화 피는 날/ 봄이 오면/ 하나의 풀이 쓰러져/ 산수유 피는 까닭/ 흔들리는 꽃/ 바람 불어 좋은 날/ 그리운 봄날/ 봄이 슬픈 사람/ 바람개비/ 벌판의 노래/ 쓰러지는 바람/ 국화심기/ 목마른 그리움/ 기다림/ 그리운 어머니
제3부 사랑할 게 많은 세상
추운 시간/ 향기/ 눈 오는 날의 기다림/ 나의 겨울/ 하얀 김치/ 무게가 삶인데/ 사랑예찬/ 고독/ 궁휼함의 인내/ 어머니의 강/ 짐을 헤아림/ 화순 치유의 숲/ 세상을 예배함/ 남기고 떠나오기/ 화순으로 가는 길/ 마중 받는 사람/ 비 오는 날엔 새도 잦아들 듯/ 사랑할 게 많은 세상/ 한 번의 고백/ 초록친구/ 손들의 조화/ 다시 보는 세상/ 약속의 허실/ 서쪽의 이야기/ 돌아온 사람/ 바꾸는 마음/ 기다려도 오지 않는 산/ 하나의 얼굴/ 잘 살기/ 각각의 전설
제4부 그리운 소금실
장마를 기다림/ 그가 슬픈 건/ 강천산의 비밀/ 불화로/ 길/ 가을 교암천/ 입암산성의 종록이/ 동네 할머니 떠나시니/ 그리운 봉준이/ 돌아선 사람/ 하루의 무게/ 풍경 달기/ 서쪽의 소식/ 떠나고 오는 정읍/ 봉준이의 생각/ 거친 날의 이별/ 왜가리의 거울나기/ 배고파 우는 삶/ 그리운 소금실/ 동네 한 바퀴 돌기/ 새로운 약속/ 사랑해야 할 이별/ 입암산성/ 말의 결심/ 봄이 오면 2/ 바람개비 2/ 기억이 멈추지 않은 세상/ 잠자는 그리움/ 사람으로 가까워야/ 비 오는 날/ 그런 그런 삶/ 산을 걸을 땐/ 사랑할 때/ 정종 한 잔/ 돌아눕는 날
[인터뷰] 꽃의 향연 그리고 역사적 서사
[ 출판사 서평 ]
늦둥이 시인으로 등단한 김용채 시인은 정읍이라는 시골의 목가적 상황을 소홀하게 보지 않고 시라는 자양분을 삶의 종착역에 두고 싶어했고 끊임없이 시의 자양분을 흡수하고 싶어 했다.
시집에서 표현된 언어는 작위적이지 않고 난해한 언어는 삼가하면서 소멸하기 쉬운 연륜에 감성을 불어넣고 있다. 삶이 주는 질긴 시간들을 나무와 꽃과 풀과 역사인식까지도 용해된 언어로 풀어낸다. 고희에 이르는 나이가 정체와 체념과 포기가 아니고 성숙한 감성으로 불을 지펴내고 있다.
[ 지은이 김용채 ]
1955년 전라북도 정읍에서 태어났고, 건국대학교에서 행정학을 공부했으며, 포항제철에서 다년간 근속했고, 현재는 고양인 정읍에서 환경운동가로 활동하고 있다.
2023년 2월 <물고기의 침묵>, <세월연습>, <봉준이가 슬픈 건>으로 ≪현대문예≫를 통해 등단하여 시를 쓰기에 정진하고 있다.
[도서명] 그리운 소금실
[지은이] 김용채
[시리즈] 예서의시030
[펴낸곳] 예서
변형국판(128×210) / 200쪽 / 값 14,000원
발행일 2024년 04월 30일
ISBN 979-11-91938-61-6 03810
분야: 문학 >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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