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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서출판

여행 그림자의 노래__최기재 시집__예서의시029

by 양정섭 2024. 4. 22.

여행은 노래여야 한다.
삶이 여행임을 노래한 시집

≪여행 그림자의 노래≫는 인도 여행에서 시작하였다. 삶이 유람인 것은 고등학교 국어교과서라면 빠짐없이 등장하는 정철의 ≪관동별곡≫에 잘 드러난다. 강원관찰사인 화자가 길게 계산하면 세 달 동안 관동팔경을 유람하고도 더 여행을 못해 갈등하는 모습에서 인간의 근원적인 여행자의 모습을 본다. 여행 그림자는 <관동별곡의 신선 여행>(30쪽)에서 이를 노래하면서 ‘자기를 잊은 여행자로 남을 일’을 꿈꾼다.
이 시집은 인도, 네팔, 몽골, 중국, 카자흐스탄, 키르기스스탄, 우즈베키스탄, 미국, 그리고 캐리비안 크루즈로 들린 멕시코, 벨리즈, 온두라스, 그랜드 케이맨, 자메이카, 바하마를 여행하면서 그날 그날 일기처럼 쓴 여행시이다.
여행지에서는 사람과 그 사람들이 만든 문화를 만난다. 여행은 그 속에 들어가 그들과 함께 호흡하고 그들과 함께 춤추다 돌아오는 일이다. 그들이 푸르면 푸른 대로 붉으면 붉은 대로 그 속에서 염색한 천처럼 물드는 일이다. 여행지에서 화자는 그들 속에 스며들어 그들이 피워내는 꽃에 공감한다.
삶은 여행이다. 여행 그림자는 여행을 하면서 삶을 본다. 아니 끝없이 삶을 보려한다. 시적 화자는 히바 유적 속에서 현재를 사는 사람들을 보며, 낙타를 타고 건조한 사막을 건너다 죽거나 집에 돌아와 보니 죽은 가족들에도 시선을 둔다. 여행 그림자는 여행 속에서 과거를 보면서 ‘지금, 여기’ 현재를 사는 사람들에 넋을 놓는다.
‘제1부 여행 그림자의 떠나는 길’은 시적 화자의 여행에 대한 소망이거나 사유이다. ‘제2부 신들의 재림’은 인도 여행 동안 보아온 신과 같은 인간들의 모습을 노래한다. ‘제3부 실크로드와 오아시스’는 카자흐스탄, 키르기스스탄, 우즈베키스탄 등 실크로드와 설산, 그리고 오아시스 도시들을 거닐던 순간들이다. ‘제4부 고산에 피는 꽃’에서는 중국과 몽골의 고산에 피는 꽃들을 묘사한다. ‘제5부 캐리비안 크루즈’는 캐리비안 해적들의 무대였던 중앙아메리카의 바다와 그 바닷가에 떠 있는 나라들에 대한 여행의 기록이며 미국 플로리다 반도의 일상이다.
여행 그림자를 따라가 보자. 먼저 <고함을 질러보자>(11쪽)의 마지막 행에서 시적 화자는 ‘나의 껍질을 터트려 갈기갈기 찢어야 한다’며 섬뜩한 언어를 내뱉는다. <여행 그림자의 떠나는 노래>의 마지막 행 ‘껍데기를 다 버릴 때까지 걸으리’는 껍질을 벗으려는 화자의 다짐이다. 이는 <배낭 속의 나>(16쪽)의 ‘허기진 나그네여, 배낭을 더 큰 허기로 채워라’로 이어진다. 그 허기는 <모두, 하나>(42쪽)의 ‘삶도 하나다 순수’에서 삶을 순수로 채우고자 한다. <타지마할, 사랑은 비추는 것>(46쪽)처럼 그 순수는 비춤으로 남는다. 종국에는 <하나를 향한 카마슈트라>(49쪽)에서처럼 ‘하나 되기 위해 그들은 사랑한다’. <핑계>(24쪽)의 ‘이것저것 핑계 대다 어느 날 죽지’를 인식하면 <흔들리며 걷기>(27)의 ‘삶은 흔들리며 걷는 것’이 되고, <알라쿨 호수>(79쪽)의 마지막 행 ‘두 눈으로 본다고 다 보는 것은 아니다.’ <히바 유적 속 사람들>(93쪽)에서 조상들의 유적인 ‘히바보다 사람이다. 히바가 닳아도’는 껍데기 벗은 여행지의 모습이다. 시적 화자는 히바에서 사람을 본다. 사람들의 행복을 본다. ‘그네들에 삶은 춤이다’(94쪽)는 ‘옵, 옵, 오빠는 강남스타일(97쪽)’로 이어진다. 여행 그림자는 <오아시스 도시 부하라>(96쪽)의 마지막 연에서 몸을 흔드는 춤꾼을 찬양한다. ‘지금 이 순간에 충실하면/ 어디에서나 제 몸을 마음껏 흔드는 춤꾼인 것을/ 우리는 스스로 제 몸을 묶고 있었나 보다.’라며 묵묵히 따르던 여행 그림자의 시적 화자는 깨달음과 동시에 탄식을 드러낸다. 여행 그림자는 <한국, 한국관광객>(98쪽)에서 우리의 삶을 잃어버린 애잔함에 빠진다. 삶은 <몽골의 할미꽃>(139쪽)처럼 당당해야 한다. 고산 지대에서 ‘삶을 피우려고 키마저 멈춘 꽃들이여(123쪽)’라는 감탄은 그 경외감에 ‘이름조차 부르기 어려워라’로 노래한다. ‘길은 언제나 길 끝을 궁금하게 한다’지만 그 끝은 자기이다. 그 자신을 자기 속에 빠트리는 일을 크루즈가 한다. ‘자유가 사망할 때까지는 자유다’라는 인식은 자기를 위한 삶을 지향한다. <재미와 무관심>(156쪽)에서 ‘삶은 그저 Fun이다, 그 외는 관여할 일 아니다’라고 한 쪽 끝의 언어로 삶을 상실한 사람들을 가운데로 끌어당긴다. <크루즈의 있고 없음>(160쪽)의 기나긴 나열은 인간사의 나열이다. 단지 캐러비안 크루즈만에서만 실현될 이야기가 아님을 보여준다. 시간적으로 무한 속의 하루살이보다 못한 존재, 공간적으로 1년 동안 빛으로 가는 거리를 기본 단위로 하는 우주 속에서 인간은 하루살이처럼 열심히 파닥거릴 뿐이다. 여행은 그 파닥거림이다. 여행은 자기 존재를 느끼는 몸짓임을 여행 그림자는 노래한다. 방관자가 아니라 빠져야 여행이고 삶이다.


여행 그림자의 노래(최기재 시집, 예서의시029, 예서 발행)


[ 책 속으로 ]

<낯선 나>

여행은 캐리비안 해적이다
해적조차 고향처럼 익숙해지면 여행은 종점이다
도둑에게처럼 소리가 천둥소리만큼 크다가
친숙한 개 짖는 소리가 되면 낯익음조차 없다
쳇바퀴가 돌아도 도는지 모르는 다람쥐 걸음이다
살아 숨 쉬는 여행은
해적들끼리도 낯설다
계절과 시간과 벤치와 길이 낯설어야 해적이다

여행은 
빙하 녹아내린 호수에서 낯선 ‘나’가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일이다


<여행 그림자의 떠나는 노래>

태양이여, 떠오르라
월광아, 비추어라
그림자 나는 너를 따르리
아침저녁으로 길게 늘어뜨리고
한낮에는 너의 발아래 너와 함께 서리

먼 길 떠나는 그대여
그림자도 설레노라
함께 걸어온 날들 벅차고
앞으로 나아갈 시간들 영롱한 무지개라
쌓이고 더한 생의 길에 채색한 수를 놓으리

떠도는 자아,
너의 실체가 사진으로 찍히지 않으니
홀로 너 자신과 만나는 순간에 함께 하리, 증언하리
먼지와 혼돈 속에서 너를 찾아
갠지스 강에 피를 씻고 눈의 때도 닦으리

비바람 몰아쳐도 삶이고
태양이 솟구쳐도 인생인 줄
나, 너의 그림자는 알고 있노라
연착하는 기차
궤변 속 삶도
그림자는 너와 함께 따르리
여정이여
삶이여, 그대 걷고 쉬고 또 걸으리
껍데기를 다 버릴 때까지 걸으리

 


<여행의 이유>

그냥 걷고
그냥 보고
그냥 여행지에 취하고
내가 먹던 음식,
내가 보던 사람,
내가 하던 일,
모두 허물 벗듯 벗으면
나는 오롯이 나로 빛난다
그 빛이 내 몸에서 배터리처럼 닳게 되면
다시 떠나야 하리
빛이 갉아먹은 나를 채워야 하리

내 몸에 남는 영양분은 비만의 집을 짓고
부족한 영양분은 쓰러지는 빈혈의 건물이다
인간은 본래 걸어야 하는 동물,
인간은 걸어서 길을 내고
걸어서 삶을 초기화한다
여행은 중앙아시아 비탈진 길을 오르내리는
양들처럼 길을 걷는 일이다
없는 길도 찾아 걷고, 만들어 걸으며 
물통처럼 넘치는 것은 버리고
허기진 배처럼 모자라는 것은 채워야 한다

여행지의 언어는 사진으로 담을 수 없고
여행지의 자연을 담은 사진도 숨 멎은 자연이다

여행지에 대한 배움은 여행을 누릴 만큼만 하고
누림이 그 배움을 넘어서야 여행이다

삶이 여행인 것을
굳이 여행해야 하는 까닭은
삶이 여행이라는 사실을 잊을까 두려워서이다


[ 시인의 말 ]

시인 신동엽처럼 껍데기는 가라.
순수가 사라지고 껍데기만 호들갑을 떤다. 이름조차 자기가 아니라고 하는데 그 이름에 또 껍데기를 덕지덕지 덧붙인다. 정치도 껍데기를 향하고, 우리가 사는 아파트도 껍데기, 브랜드를 떠받든다. 껍데기를 벗으려 여행을 떠나는데 거기에서 또 껍데기를 한 겹 덮어쓰고 온다. 맑은 생각은 껍질이거나 껍데기를 벗은 순수의 속살이다. ‘나’라는 삶의 순수를 생각해 본다. 껍데기 세상에서 도달해야 할 알맹이 아닌가! 여행이 그나마 껍데기나 껍질을 벗기는 기회가 되리라.


[ 차례 ]

낯선 나

제1부 여행 그림자의 떠나는 길
고함을 질러보자/ 여행 그림자의 떠나는 노래/ 여행의 이유/ 배낭 속 나/ 생각의 환전/ 신조차 과거는 과거/ 핑계/ 로망과 현실 사이/ 종교 여행/ 흔들리며 걷기/ 검정과 하양/ 관동별곡의 신선 여행/ 무슬림 회당에서/ 여행 그림자를 위한 노래/ 여행, 한 줌의 언어

제2부 신들의 재림
혼돈의 거리/ 환승/ 모두, 하나/ 사막의 밥/ 타지마할, 사랑은 비추는 것/ 생명의 물/ 하나를 향한 카마슈트라/ 돌고 도는 돈/ 바라나시 고돌리아/ 갠지스의 화장터/ 인도여/ 윤회의 사슬/ 질경이 인생/ 다르질링 천상의 도시/ 마더 테레사 하우스/ 포카라 페와 호수의 아침

제3부 실크로드와 오아시스
차린 협곡/ 메데우 침볼락 빙하/ 알틴 아라샨 트레킹/ 알라쿨 호수/ 무지개가 발아래에 뜨는 길에서/ 알라메딘 트레킹/ 자작나무 거리 산책/ 우즈베키스탄 히바의 빛/ 히바 유적 속 사람들/ 오아시스 도시 부하라/ 한국, 한국관광객/ 기대는 기대를 넘지 못하고/ 중앙아시아 환전/ 초원의 유목민/ 삶의 고행, 실크로드/ 중앙아시아 음식

제4부 고산에 피는 꽃
화호, 꽃길을 걸으며/ 쓰촨성의 청두/ 말이 말을 경계하고/ 초원과 고산증의 길/ 감숙성 짜가나 마을의 바위산/ 라브랑진 사원의 도시/ 쓰촨성 천장터/ 청해호 유채꽃도 흔들리고/ 정략결혼의 포탈라궁/ 차카 염호/ 칭하이성에 피는 꽃/ 몽골의 할미꽃/ 홉스굴 꽃동산/ 칭기즈칸의 초원/ 울란바토르 칭기즈칸/ 물길 따라 나무

제5부 캐리비안 크루즈
COZUMEL에서 데킬라를/ 멕시코만 크루즈/ 캐리비언 카니발의 빌리즈 시티/ 재미와 무관심/ 온두라스 로아탄/ 그랜드 케이먼/ 크루즈의 있고 없음/ 36시간 망망대해/ 콧수염을 기르려다/ 불꽃놀이/ 마이애미 키웨스트 선셋/ 플로리다 더 빌리지스의 노부부/ 결혼식/ 새해

[인터뷰] 여행, 그 떠도는 자아의 기록


[ 출판사 서평 ]

삶은 수단이 아니다. 여행도 수단이 아니다. 시는 시가 목적이듯 삶이거나 여행도 그 자체가 목적이다. 시를 잃어버린 시대에 여행에서조차 걷는다는 사실을 잊은 듯하다. 여행은 여행지에 스며들었다가 빠져 나오는 일이다. 어느 순간에 우리가 좀 더 잘 살게 됐다고 여행지마다에서 평가하며 계몽에 나선다. 여행지의 사람들이 여유로움에서 누리는 행복을 나무라며 능률을 주입하고자 한다. 노자는 ≪도덕경≫에서 천지불인(天地不仁), 천지는 스스로 그러하다고 말한다. 장자는 ≪제물론≫에서 일체의 사물이 모두 같다고 했다. 각자 그 자체를 존중하며 각자의 삶을 살아야 한다. 우리의 일부는 예전보다 더 잘 살고 더 잘 배워서 불행해졌다. 이를 의식하듯 시적 화자는 예전처럼 자기를 비우고 각자의 삶을 존중하는 법과 동시에 자기를 살아야 함을 여행으로 말하고 있다. 이 책은 시적 화자가 껍데기가 아닌 맨살을 위한 여행을 노래하면서 인간다움에 대한 공감으로 삶은 여행이어야 함을 노래한다.


[ 지은이 최기재 ]

어문 교육학 박사. 전북 완주에서 태어났다. 2015년 계간 ≪미래시학≫을 통해 등단하였으며 (사)전국독서새물결모임에 참여하고 있다. 최근에 시와 해설을 덧붙여 쓴 2종의 저서 ≪치유의 언어: 논어와 함께 노자·열자·장자 함께 읽기≫ 상·하권(인간사랑, 2023.12), ≪일리아스의 거의 모든 것≫(인간사랑, 2023.2)을 출간했다. 기타 저서로 ≪고교생들의 그리스인 조르바 읽기≫(2017), ≪독서논술 지도의 방법과 실제≫(공저, 2008) 등이 있다.


[도서명] 여행 그림자의 노래
[지은이] 최기재
[시리즈] 예서의시029
[펴낸곳] 예서
변형국판(128×210)/ 200쪽/ 값 14,000원
발행일 2024년 04월 30일
ISBN 979-11-91938-60-9 03810
분야: 문학 >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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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여행이고 무엇이 여행인가에 대해 쓴 내 사유의 기록을 여행 그림자의 시각으로 노래하였다. 시적 화자는 여행의 목적이 나다니며 스며드는 과정, 삶이 여행임을 노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