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서의시 시인선 공모전 첫 번째 시집 발간
김성은 시집 ≪순간의 환영≫
시 그리고 음악의 매혹
예서의시 시인선 공모전은 2023년 5월 시작하여 9월 30일에 마감되었다. 이 시집은 예서의시 시인선 공모전에서 당선된 시집 발간으로 김성은 님의 ≪순간의 환영≫이 그 첫 번째 시집이다.
음악을 다룬 문학작품은 많이 있다. 하지만 대부분 음악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이 결여된 채 음악에 대한 추상적인 개념만을 장황하게 늘어놓는 경우가 허다하며 음악의 전문성을 접목하기에 부족함이 많았다. 그에 비해 이 시집은 음악을 전공한 전문성을 최대한 살려 음악과 문학을 자연스러우면서도 매끄럽게 접목하고 있다는 데 의미가 크다.
이 시집은 진지함과 유쾌함이 공존하고 있는 책이다. 이 책은 지나치게 무겁지도 않고 지나치게 가볍지도 않은 특징을 가지고 있다.
지은이 ‘김성은’은 러시아의 작곡가 세르게이 프로코피예프는 순간의 감정이나 순간적으로 머릿속에 떠오른 아이디어를 놓치지 않고 음악으로 절묘하게 포착하여 시적으로 전달하고 있다. 20개의 소품으로 이루어져 있는 그(김성은)의 피아노 작품 ‘순간의 환영’은 순간 포착의 집합체이기도 하다. 작가는 그와 같은 방식으로 시를 쓰기로 마음먹었고 원고의 분량이 채워졌을 때 추호도 망설임 없이 시집의 제목을 ≪순간의 환영≫으로 정하기로 마음먹었다고 한다.
이 시집은 총 3부로 나누어져 있다.
서정시로만 이루어져 있는 1부 서정 소품집은 지은이가 현실에서 경험했던 사랑의 감정을 담고 있으며 특정한 누군가를 향하고 있다. 지은이는 노르웨이의 작곡가 에드바르드 그리그의 <서정 소품집>을 본떠 1부의 제목을 ‘서정 소품집’으로 정했다. 서정 소품집에 포함된 시들의 제목 역시 위대한 작곡가들의 곡명을 따온 경우가 많다. <Erotic>-(그리그, 서정 소품집 중 Erotic), <사계>-(비발디, 사계), <백조>-(생상스, 백조), <헌정>-(슈만, 헌정), <사랑의 인사>-(엘가, 사랑의 인사), <무언가>-(멘델스존, 무언가) 등이 이에 해당한다. 서정 소품집에서 특히 주목할 만한 시는 <무언가>이다. ‘무언가’는 가사가 없는 노래를 뜻한다. 지은이는 서정 소품집을 마무리하는 <무언가>의 본문 내용을 공백으로 남겨두었다. 이는 누군가에 대한 자신의 마음은 말과 언어로 이루 표현할 수 없다는 것을 극대화하여 나타내기 위한 지은이의 의도에서 비롯된 것이다. 멘델스존은 자신의 ‘무언가’를 통하여 가사 없이도 어떤 특정한 감정과 이미지를 음악으로 노래하고 그려낼 수 있다는 것을 입증했다. ≪순간의 환영≫의 지은이는 본문 내용이 아예 없는 시 <무언가>를 통하여 언어 없이도 어떤 특정한 감정과 이미지를 노래할 수 있다는 것을 입증했다. 독자들은 본문 내용이 공백으로 남아있는 시 <무언가>를 통하여 음악과 문학의 연관성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2부 ‘사르카즘-독립출판물 풍으로’는 유머의 색채가 짙게 배어 있는 작품들로만 구성되어 있다. 1부 서정 소품집이 장조와 단조가 혼합되어 있다면 2부 사르카즘은 철저하게 장조 중심으로 이루어져 있다. 사르카즘은 ‘조롱’, ‘풍자’, ‘비아냥’의 뜻을 내포하고 있다. 러시아의 작곡가 세르게이 프로코피예프는 자신의 문제작인 피아노를 위한 5개의 소품 <사르카즘> Op.17을 통하여 전통적인 화성법에 대한 반감을 여지없이 드러낸 적이 있다. 그의 <사르카즘>은 아카데미즘에 젖어 있던 당대의 주류 음악계에 대한 신랄한 조롱이기도 하다. 2부 사르카즘의 핵심 키워드 역시 조롱이다. 그리고 지은이 역시 2부 사르카즘을 통하여 기존의 시 창작 방식에 대한 반감을 여지없이 드러내고 있다. 일상의 소재가 희화화 되어 시의 형태로 나타나면 어떤 이들은 천박하다고 말하곤 한다. 지은이는 <눈물 젖은 빵>, <육교에서 있었던 일>, <뷔페에서 있었던 일>에서 자기 자신을 신랄하게 풍자하고 조롱하는 데 주저함이 없다. 2부에 포함되어 있는 우스꽝스러운 작품들을 통하여 지은이는 왜 일상의 소재들이 희화화 되어 시의 형태로 나타나는 것이 사실상 금지되어 있는지 주류 문학계에 묻고 있다.
3부 ‘엑스터시-술 취한 상태에서 기록한 것들’의 핵심 키워드는 음악, 음악가이다. 지은이는 한 시대를 풍미했던 음악가들을 다양한 방식으로 그려내고 있다. <음악계의 김원봉-남과 북 모두에게 버림받은 비운의 작곡가 정추>는 완전한 산문 형태이고 <발걸음 소리-스크랴빈 피아노 소나타 9번 ‘검은 미사’를 생각하며>는 시와 희곡이 혼합되어 있다. 그리고 <녹취록-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와의 대담 중 일부>는 시와 모노드라마, 스케치 형식이 점철되어 있다. 지은이의 실험정신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시집을 마무리하는 3부의 마지막 시 <Arietta-안톤 베베른 풍으로>는 악상 기호와 함께 ‘끝’이라는 단어 하나만 들어 있다. 지은이는 시의 개념을 확장하기 위하여 마지막 순간까지 실험을 멈추지 않았다. 독자들은 3부 엑스터시를 통하여 지은이가 음악과 문학을 접목하기 위하여 얼마나 다양한 실험을 했는지 알게 될 것이다.
[ 책 속으로 ]
시집에는 시가 가운데정렬이 되어 있습니다. 참고 바랍니다.
<한 끗 차이>
고통과 쾌감은 한 끗 차이
사랑과 증오도 한 끗 차이
천재와 광인 역시 한 끗 차이
출생의 순간과 죽음의 순간 또한 한 끗 차이
율동성을 가진 시의 리듬과
율동성을 가진 음악의 리듬도 역시 한 끗 차이
특히 시와 음악은
인류가 창조해낸 가장 위대한 이 두 유산은
서로가 너무나도 닮아 있어서
나는 때때로 이 두 장르를 혼동한다네
<눈물 젖은 빵>
처음으로 아파트에서 혼자 자취를 시작했을 무렵
쌀밥 위에 쇠고기 다시다를 뿌려서 먹다가
쇠고기 가루 비슷한 것이 씹혀지기라도 하면
‘오늘은 재수가 좋다’ 하며 마냥 행복해했던 그때 그 시절
그 당시 내가 할 수 있었던 유일한 요리였던 양파 볶음
프라이팬에 식용유를 뿌리고 양파를 볶다가 마지막으로
잘 익은 양파 위에 간장 한 숟가락을 뿌리면
모든 것이 해결되었지
나는 나의 광기가 시작되었던 그날을 뚜렷하게 기억한다
양파를 볶기 위해서 양파 껍질을 깔 때 하염없이
흘러내렸던 눈물 그리고 그 순간 나의 머릿속에서
순간적으로 번뜩였던 섬광 그 섬광은 나의 삶에
움트기 시작한 광기의 씨앗이었다
그때 나는 흐르는 눈물을 닦으며 생각했었지
삶을 알고 싶다 삶을 누리고 싶다 삶을 논하고 싶다
그리고 냉장고 안에서 말라비틀어진 큰 빵 하나를
꺼낸 뒤 그 빵을 바라보며 진지하게 생각했었다
조준 목표설정 발사
그리고 내 귀에 들려왔던 새로운 세계의 울림
뚝 뚝 뚝
명중을 알렸던 그 소리는 촉촉한 질감을 가지고 있었고
공기와 같이 가볍게 느껴졌지만 동시에 세상을 위아래
이리저리 뒤흔들 수 있는 삶의 육중한 무게감을
내포하고 있는 듯
텁텁하면서도 무거운 울림을 가지고 있었다
메마른 땅이 빗물을 흡수하듯이 서서히 나의 눈물을
흡수했던 그 큰 빵 그 말라비틀어졌던 빵
그러나 공기가 순식간에
내 눈물의 수분을 삼켜버릴 수 있었기에
나는 조급한 마음으로 빵을 한 입 베어 물었지
눈물 젖은 빵을 먹으며 나는 생각했었다
음 생각보다 촉촉해 그리고 염분이 느껴져
그 순간 반복적으로 들려왔던 형의 목소리
임마 이거 완전 또라이네
임마 이거 완전 또라이네
임마 이거 완전 또라이네
<Arietta>
-안톤 베베른* 풍으로
PP (피아니시모**)
끝
*안톤 베베른은 축약된 형식의 틀을 기조로 하여 최소한의 음을 사용하여 음악을 작곡했던 미니멀리즘 음악의 대표적인 작곡가이다.
**피아니시모는 ‘매우 여리게’를 뜻한다.
[ 시인의 말 ]
죽음 앞에 마주 서게 되면
인생의 모든 순간은
덧없는 환영일 뿐
[ 차례 ]
한 끗 차이
1부 서정 소품집
Erotic/ 한 음유시인의 세레나데/ 눈/ 사계/ 기도/ 백조/ 미소/ 헌정/ 사랑의 인사/ 무언가
2부 사르카즘-독립출판물 풍으로
냄새 퇴치/ 눈물 젖은 빵/ 육교에서 있었던 일/ 사르카즘/ 회상/ 장성규/ JTBC 전현직 여자 아나운서들의 여권 영문 이름 및 한자 이름 뜻풀이/ 뷔페에서 있었던 일/ 돌려차기/ 아버지의 마음/ 아이스 아메리카노/ 코미디/ 더러운 이야기/ 이상형 월드컵
3부 엑스터시-술 취한 상태에서 기록한 것들
고찰 1/ 고찰 2/ 음악계의 김원봉/ SY에게/ SU에게/ 음악에게/ 라크리모사/ 순간의 환영/ 발걸음 소리/ 여정/ 찬가/ 술 취한 자의 노래 1/ 술 취한 자의 노래 2/ 녹취록/ Arietta
[인터뷰] 시 그리고 음악의 매혹
[ 출판사 서평 ]
이 책 ≪순간의 환영≫은 ‘시가 무엇인가?’, ‘시는 어떻게 써져야 하는가?’ 하는 궁극적인 질문을 던져주는 시집이다. 시집에 포함된 거의 모든 작품은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왼쪽 정렬이 아니라 중앙 정렬로 되어 있다. 이를 통해 독자들은 지은이가 머릿속으로 그렸던 독특한 음악적 리듬과 운율을 느낄 수 있다. 그리고 시집의 2부인 사르카즘을 통하여 지은이는 시는 어떤 순간에도 심오해야 하며 무게감을 잃으면 안 된다는 일반적인 통념에 이의를 제기하고 있다. 시의 구성 방식을 보자면 러시아의 작곡가 스크랴빈을 그려낸 <발걸음 소리-스크랴빈 피아노 소나타 9번 ‘검은 미사’를 생각하며>는 시와 희곡이 혼합되어 있다. 그리고 작곡가 쇼스타코비치의 독백을 담아낸 <녹취록-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와의 대담 중 일부>는 시와 모노드라마, 스케치 형식이 점철된 작품이다. 1부 서정 소품집의 마지막 작품인 <무언가>는 본문의 내용이 아예 없고, 시집을 마무리하는 3부 마지막 시 <Arietta-안톤 베베른 풍으로>는 악상 기호와 함께 ‘끝’이라는 단어 하나만 들어 있다. ≪순간의 환영≫은 통속적인 방식으로 시를 규정하려는 모든 이들에게 ‘과연 누가 그들에게 시를 판단하고 시를 규정할 권세를 주었는가?’ 하는 질문을 던지고 있다.
지나칠 정도로 감성에 호소하는 감성 시의 범람은 시라는 장르가 진부하다는 인식을 독자들에게 심어주었다. 그리고 문학의 구조를 완전히 꿰뚫고 있으나 엘리트 의식에 사로잡혀 있는 이들의 시는 일반적인 독자들의 눈에는 너무 어렵게 느껴지기 때문에 의도치 않게 독자와 순수문학 사이에 거리감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순간의 환영≫은 틈과 공간을 가지고 있다. 지은이는 음악을 전공한 만큼 음악 안에 있는 시대정신을 언어를 이용하여 포착하면서 전문성을 살렸다. 또한 유머를 잃지 않으면서도 최대한 진지한 방식으로 인생의 희로애락을 글로 옮겼다. 그렇기에 이 책은 음악과 문학 사이의 거리감을 최대한 좁혔다고 할 수 있다. 시집 안의 작품 배치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지은이는 지나치게 어느 한쪽의 감정으로 치우치는 것을 막기 위하여 적절하게 생각할 수 있고, 웃을 수 있고, 음미할 수 있는 틈과 공간을 시와 시 사이에 두었다. ≪순간의 환영≫에 포함된 시들은 삶의 한 가운데서 인간이 느낄 수 있는 갖가지 감정과 그 감정을 만들어낸 상황을 언어로 포착하여 그려낸 그림들이다. 각각의 시들은 장조와 단조의 조성으로 각각 구분되어 있는 동시에 진지하면서도 경박한 유머의 색상으로 채색되어져 있다.
[ 지은이 김성은 ]
1985년 부산에서 태어났다. 자신의 생일(5월 30일)에는 무슨 일이 있더라도 가브리엘 포레의 레퀴엠 음반을 감상하는 고상하면서도 기이한 취향을 가지고 있다. 이름이 주는 느낌과는 다르게 남자이며 피아노를 전공했다. 부산 브니엘 예술중학교와 러시아 모스크바 차이콥스키 국립 음악원 부속 우칠리쉬(the Academic Music College of Moscow State Tchaikovsky Conservatory), 그리고 러시아 모스크바 차이콥스키 국립 음악원(the Moscow State Tchaikovsky Conservatory)을 졸업했다. 신춘문예 수상 경력이 없고 문예지 상에서의 작품 발표를 한 적이 없는 미등단자인데 시인선 원고를 공모한 출판사에 보낸 시집 원고가 채택되어서 얼떨결에 시인이 되었다. 저서로는 음악을 통하여 존재의 의미를 찾아갔던 10년간의 여정을 담은 불꽃을 향하여, 음악을 바라보는 시선이 있다.
[도서명] 순간의 환영
[지은이] 김성은
[시리즈] 예서의시027
[펴낸곳] 예서
변형국판(128×210) / 144쪽 / 값 12,000원
발행일 2023년 12월 30일
ISBN 979-11-91938-57-9 03810
분야: 문학 >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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