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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서출판

봄벗(이채현 시집, 예서의시017)

by 양정섭 2021. 12. 14.

생명을 품어온 것들이 발아하듯

봄벗을 맞이하기를 희망하다

사랑, 그 모를
사람, 그 모를

붉은 벽돌 쌓으려는데

희생, 그 모를
당신, 그 모를

빛이 스미는 어둠
-시 <안개꽃> 전문

시인은 <은하(銀河) 깊어진 밤>에서 “사람이 절망임에 이르렀을 때 내 등불이 꺼져갈 때/ 어둠이 드러낼 때까지 있기로 했다.”고 울먹이고 있다. 이 맥의 진원은 앞의 시 <안개꽃>에서 드러나고 있는데, 인간적 사랑에 대한 불신과 회의이며 이것은 신 존재의 사랑에의 의혹으로까지 파장이 인다. 내심 견고한 벽돌을 쌓아 성(城)을 만들어 고립되려고 하는 계획에 이르나 마음 한 곁을 두드리는 차마 외면할 수 없는 희생이라는 사랑의 진면목이 내부를 균열시키고 일어 혹독히 사랑하는 법을 배워가기로 한다.

사랑에도 뼈가 있어야겠습니다.
참 바름 옳음 곧음 굳음 질김 대참 

사랑에도 살이 있어야겠습니다.
위함 깊음 연함 너름 고움 청아함 묵묵함 

혹독히 자신을 사랑하는 법을 배워갑니다.
사군자(四君子)
-시 <갖춘잎> 전문

시인은 사랑에도 뼈가 있어야 하고 살이 있어야 한다고 얘기한다. 시인이 나열한 덕목들을 살펴볼 때, 뼈는 ‘정의’를 살은 ‘자비’를 빚어놓은 것 같다. 현실에서 사랑만큼 복잡 미묘한 것은 없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항상 긴장의 조율관계에 놓이고 깨어 있어야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렇다고 이해타산의 관계에서 주고받음을 명시하라는 것은 아닐 것이다. 자아가 부서져 비워지는 사랑의 정점에 이르는 과정은 수타 내어줌에 상처의 고통을 겪어내야만 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함께하는 사람들과 울고 웃으며 동행하는 여정이 인생길일 것이다.

인간이 무엇이기에
뜨거운 됫박에 듬뿍

지상의 사람은, 불면(不眠)의 가정 학교 일터 연회 교회 군
대 의원… 무덤

저 먼 연(緣) 하나하나 엮어 이삭 수(繡)놓으련
생명에 환대 존재에 환대
-시 <들녘> 전문

“인간이 무엇이기에 이토록 기억해 주십니까? 사람이 무엇이기에 이토록 돌보아 주십니까?”라고 (시편8, 4~5) 성경에 표현되어있다시피 인간은 그분의 절대사랑을 받고 있는 존재들이다. 허나 시인이 <단초(端初)>에서 읊조리는 것처럼 “무너뜨려지지 않는 벽이 사람/ 변화하려들지 않는 벽이 지구/ 절망하려들지 않는 벽이 탐욕/ 벗어나려들지 않는 벽이 마음”의 우리 사람들이지 않을까싶다. 시인은 묻는다. 저 먼 연(緣) 하나하나 엮어 이삭 수(繡)놓지 않겠느냐고. 그 길은 존재한다는 것만으로도 존재 자체만으로도 서로에게 의미가 되는 생명에의 환대가 아닐까. 그분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것처럼.

 

봄벗(이채현 시집, 예서의시017, 예서 발행)



[ 시인의 말 ]

사랑이여, 지상의 사랑 풀꽃바구니에 담습니다.


[ 차례 ]

서로사랑

제1부
은총(Grace)/ 새/ 뜰/ 생명수(繡)/ 안개꽃/ 반어법/ 백합여인/ 순간순간 선택/ 갖춘잎/ 순명/ 여름나무/ 희망/ 마냥 좋은/ 걸음/ 곧은 길 고운 길/ 가을 나뭇잎/ 꽃 피울 수 있더냐/ 훈육(訓育)/ 순간순간일지라도/ 산책 / 괜찮겠는지요

제2부
까치발/ 고해성사/ 진심/ 패턴(pattern)/ 선물/ 사랑/ 파삭파삭한 그리움이라는 단어/ 연필향나무/ 겨울 숲/ 인격적 만남/ 간밤꿈/ 꽃잎/ 나무/ 진심 2/ 생명/ 사막밤하늘/ 걷기/ 벗나무라/ 너는 나를 사랑하느냐/ 색동실타래/ 순간순간 선택 2

제3부
나무사랑/ 풋향기/ 큰사람/ 들녘/ 은하(銀河) 깊어진 밤/ 십자나무묵언(黙言)/ 단초(端初)/ 석류/ 거울/ 눈밭/ 겸허(kenosis)/ COVID-19/ 무소유/ 와서 아침을 먹어라/ 귀히 여김/ 초록별/ 순례자/ 우정/ 살아보니/ 조각조각 벗꽃들/ 일상수련꽃

제4부
홍엽(紅葉)/ 생각 하나/ 생각 둘/ 생각 셋/ 생각 넷/ 생각 다섯/ 크레파스/ 아침산책/ 강/ 별 같은 꽃/ 비둘기들의 만찬/ 언뜻언뜻/ 사랑 있는 사랑 평화 있는 평화/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연잎/ 눈망울/ 단상 하나/ 단상 둘/ 단상 셋/ 국화

[해설] 밤하늘 결곡한 별들의 순례_김상용 시인


[ 책 속으로 ]

<서로사랑>

천국의 숲은 이곳이지요. 

매서운 그림자 뒤덮여 흐느끼는 것 밖 아무 것도 못할 벽 안 흐르는 한 줄기 빛, 그건 용서이지요.

천국의 꽃은 이이이지요.

함박꽃나무 터트리는 하얀 웃음울음 이 마음이 이 마음으로 보여 흐르는 슬픈 목청(木靑), 그건 생명이지요.

천국의 밭은 영원이지요.

현재(現在)는 현재(顯在)를 볼 수 없음의 깨침 안서 탄생하려고 기다리는 겨자씨들, 그건 믿음이지요.


<은총(Grace)>

연유(緣由)를 찾지 못하는 연유(緣由)에

차갑고 모진 계절 없애주시기보다 함께하여주심 그 계절 이미 앞서 당신은

그리고 이즈음 늦은 봄날 당신을 


<단상 하나>

한창 치기와 만용이 넘실대던 즈음, 예기치 않던 통고가 찾아온 겨울 그 밤 의원에 가기 전 저는 집에서 누워 세례를 받고 싶다고 엄마에게 말씀드렸고 그리하여 신부님께서 직접 방문하셔서 세례를 받게 되었지요.

제게 닥친 고통의 무게는 짐으로 계속되기에, 신앙인이라면 누구나 하는 ‘왜 내게 이런 고통이’라는 지점이 늘 따라다녔었지요. 

모든 것이 늦된 사람이라 이 봄 어느 날 문득 생각나는 거예요. 아, 그분은 제가 고통의 문으로 들어서는 것을 이미 미리 아시고, 당신과의 동행을 마련해주셨던 것이라는 것을요. 그분은 그런 분이신 거예요. 

개인사에서 까마득하게 잊어버리고 있었던 이 엄청난 은총(Grace)을 이제야 발견한 거예요. 희미한 촛불처럼 타듯 말듯 해온 삶이라 부끄럽기 그지없지만요. 그분은 늘 함께하시기에 이제는 그분의 침묵의 언어에 경청하려 합니다.


[ 출판사 서평 ]

인간과 과학과 물질과 쾌락이 만연한 요즈음, 신의 존재는 그다지 환영받지 못하고 있다. 가난과 병고와 소외와 전쟁과 불의와 불평등 등의 고통을 줄여주지 못하고, 기도와 봉사와 헌신도 무력하기 그지없다. 인간에게 내재하고 있는 욕망과 탐욕은 끝이 없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문학은 삶을 언어로 빚어내 본연의 인간성과 바람직한 세상을 꿈꾼다. 마더 데레사 수녀는 “인간에게는 빵도 필요하지만 그보다 더 근원적인 사랑이 필요하다”고 했다. 이 사랑은 인간적인 사랑을 초월한 절대자로부터의 자비심(agape)이며 이것이야말로 아픈 지구인과 병든 지구를 치유할 수 있다고 지은이 이채현은 말한다. ≪봄벗≫은 여기에 맞닿아 조금이나마 이 역할을 할 수 있었으면 한다. 이 책은 예수 그리스도의 향기, 영성의 향기가 전해지기를 바란다.


[ 지은이 이채현 ]

1964년 경상북도 안동에서 태어나, 1988년 이화여자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1993년 이화여자대학교 교육대학원 교육학과를 졸업했다. 시집으로 ≪그대에게 그런 나였으면≫, ≪하늘에서 꽃이 내리다≫, ≪사랑한다면≫, ≪밤빛≫, ≪기린 같은 목 사슴 같은 눈≫, ≪마음 풀밭 꽃밭 삶≫이 있고, 수필집으로 ≪자박자박, 봄밤≫이 있다.


[도서명] 봄벗
[시리즈] 예서의시017
[지은이] 이채현
[펴낸곳] 예서
변형 국판(128×210) / 108쪽 / 값 10,000원
발행일 2021년 12월 10일
ISBN 979-11-91938-03-6 03810
분야: 문학>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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