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소설을 다 읽고 나면 자기 자신도 무언가 이야기하고 싶어진다.
상처 하나 없는 사람은 없을 테니까.
“독자들은 이 소설을 다 읽고 나면 왠지 자기 자신도 무언가 이야기하고 싶어지는 듯한 착각을 느끼게 된다. 소설 속 안처럼, ‘너’처럼, 그리고 그 이야기를 들어줄 ‘나’처럼 두루마리 치유법을 실행해보고 싶은 욕망이 서서히 커지는 것을 느낀다. 이 세상 누구라도 가슴 한켠에 상처 하나 없는 사람은 없을 테니까. 2인칭을 적극적으로 활용한 이미란 작가의 소설 쓰기가 결국 이와 비슷한 것이 아닐까 싶다. 끊임없는 독자와의 대화, 작품 속 허구 세계로의 유혹적인 초대, 희망을 향한 묵묵한 발걸음 같은 것 말이다.”(장두영 문학평론가)
이 책 ≪너의 경우≫는 아직도 많은 독자에게 낯설게 느껴지는 이인칭 단편소설을 수록한 창작집이다. 이 책에는 소설의 주인공을 ‘너/당신’이라고 부르며 서사의 대상으로 삼는 단편소설 5편(<당신?>, <너의 경우>, <일박 이일>, <진실>, <거짓말>)이 실려 있다. 이 소설들에서 사용된 이인칭 호칭은 독특한 서사적 효과를 발생시키며 각 작품의 주제 구현에 기여한다. 독자를 수화자처럼 느끼게 하는 효과가 있는 이인칭 소설은 한편으로는 작중인물에 관한 보고적 진술이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독자를 향한 직접적인 말 건네기의 서사 형식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현재 시제를 활용한 서술이 많아서 인물의 생생한 감정과 활동의 순간으로 독자를 초대하며 이인칭 소설의 향취와 긴장감을 느끼게 한다. 이 책은 독자에게 새롭고 상호주체적인 독서를 체험하게 하며, 소설을 쓰려는 이에게는 이인칭 서사에 대한 아이디어를 제공한다.
<당신?>은 SF적 상상력으로 포스트휴먼에 대한 욕망과 경계를 다룬 작품이다. 뇌수종 수술을 받고 혼수상태에 빠져 있다가 깨어난 ‘당신’이 각종 생체공학기술의 신봉자가 되어 적극적으로 기계 인간이 되어 가고 있는 과정을 아내인 ‘나’가 지켜보며 당혹감과 두려움을 전한다. 교통사고를 당한 아들의 뇌를 컴퓨터에 업로드하자는 제안을 하는 ‘당신’에게 ‘나’는 ‘당신’이 과연 ‘당신’인가를 묻는다.
<너의 경우>는 치유적 글쓰기로서의 소설 창작에 관한 이야기이다. 소설 창작의 과정을 통해 트라우마를 극복한 학생 ‘안’의 스토리를 내부 이야기로 제시하며, 또 다른 학생인 ‘너’가 소설 창작을 통해 트라우마를 극복해 가기를 바라는 ‘나’가 ‘너’의 서사적 진실을 독려하고 추적해 가는 내용이다. 트라우마를 지닌 소설 창작자가 자신의 상처를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발화의 표층으로 끌어올려 대면함으로써 스스로 치유의 길을 발견하는 과정을 설득력 있게 이야기한다.
<일박 이일>은 시어머니와 친정엄마와 동행한 ‘너’의 일박 이일의 여행을 통해 두 노인의 삶의 여정과 노화의 모습을 생생한 감각으로 보여주는 소설이다. 자존심 강한 시어머니와 헌신적인 삶을 살아온 친정엄마, 두 노인의 삶을 반영하는 행동과 취향은 디테일의 재미를 주면서 모녀간, 고부간의 관계와 이해에 대한 일반적이고 보편적인 정서를 전달한다.
<진실>은 진술 분석을 통해 애인의 범죄 혐의를 추적하는 이야기이다. 해바라기센터에서 일하는 진술 분석가인 ‘너’는 성추행 피해자인 초등학교 3학년의 진술 분석을 맡게 되는데, 피의자는 너의 애인인 ‘그’로 밝혀진다. ‘너’가 알고 있었던 ‘그’와, 거짓이라고 할 만한 뚜렷한 근거가 없는 아이의 진술 사이에서 과연 진실은 무엇이며, 진실을 가리는 상형문자는 무엇이었는지가 긴장감 있는 추적의 서사로 드러난다.
<거짓말>은 습관적인 거짓말쟁이 이야기를 전하는 인물 ‘당신’에 관한 이야기이다. ‘당신’은 아들의 여자친구인 ‘승혜’를 가난한 연인처럼 사랑한다. 승혜의 습관적인 거짓말 속에 승혜가 되고 싶은 승혜가 들어 있다고 생각하며 승혜를 용서하고 구하는 과정을 이야기한다. 그러나 ‘당신’이 베푼 모든 물질과 선의가 거짓말의 재료로 이용되었다고 여겨질 때, 승혜를 파혼으로 몰고 가는 ‘당신’은 거짓말에서 얼마나 자유로운가를 묻고 있는 소설이다.
각 소설이 시작되는 첫머리에 실린 삽화는 일러스트레이터 펀 그린의 작품으로 이 책을 읽는 독자에게 또 다른 즐거움을 제공한다.
[ 책 속으로 ]
“나는 당신의 젊음이 역겹다. 정확히 말하면 늙은 얼굴을 하고 젊은 몸을 과시하고 있는 게 거슬린다. 인공 장기와 인공 눈과 인공 관절로 젊은 몸인 척하는 게 그로데스크하게 느껴진다. 당신도 그것을 느끼는 모양이다. 이제는 인공 피부 이식을 하러 들어가겠다고 한다. 주름살과 늘어진 피부를 떼어내고 탄력 있는 피부로 바꾸겠다는 것이다. 젊은 얼굴로 바꿔 오겠다는 당신은 완전범죄를 꿈꾸는 사람처럼 보인다.
나는 ‘테세우스의 배’를 떠올린다. 아테네의 영웅 테세우스가 크레타의 괴물 미노타우루스를 죽이고 젊은이들을 구출하여 돌아왔을 때, 아테네 사람들은 이 승전의 배를 잘 보존하고 싶었다. 그들은 세월이 흘러 부식된 널빤지를 뜯어내고 새 목재로 교체해 가면서 이 배를 데메트리오스 팔레레우스의 시대까지 보존했다. 그런데 재료가 계속 교체되어 온 이 배를 그때의 ‘테세우스의 배’라고 말할 수 있을까? ‘테세우스의 배’라는 정체성은 어느 정도의 변모를 허용하는 것일까? 당신의 몸에 계속 당신이 아닌 것들이 끼어든다면, 당신은 언제까지 당신이라고 할 수 있을까?”(<당신> 중에서)
“에티오피아에서는 아픈 사람이 성직자와 함께 두루마리를 만드는 천 년 전통의 두루마리 치유법이 있다고 한다. 아픈 사람은 성직자에게, 언제 어떻게 그 괴로움을 당하게 되었는지, 왜 아프게 되었다고 생각하는지, 아프기 전의 생활과 현재의 상태는 어떠한지,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는 어떠한지에 대해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말하면서, 성직자가 그에 합당한 기도와 문양의 두루마리를 만들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다. 아픈 사람은 성직자와 함께 이야기를 주고받으면서 질병의 맥락에서, 자기 삶의 서사적 질서를 헤아려 보는 것이다. 그래서 에티오피아에서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 치유에 도움이 된다고 믿어진다.
나는 네가 소설을 쓰면서 네 영혼을 치유할 두루마리가 만들기를 바랐다. 네게 무슨 일이 일어났고, 무엇을 느꼈는지를 이해하면서 네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 그 사건의 의미를 네 삶에 통합시킬 수 있기를 바랐다. 사실 모든 기억은 왜곡이다. 너의 기억 또한 사실 자체가 아닐 수 있다. 네가 소설 쓰기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것은 다만 서사적 진실, 그러나 그 서사적 진실을 구현해 냄으로써 너는 삶이 일관성 있다고 느끼게 되며, 네가 견뎌왔던 트라우마의 영향에서 벗어나 네 삶의 주도권을 얻을 수 있었을 것이다.”(<너의 경우> 중에서)
“너는 꿈결의 당혹을 몸으로 느끼면서 잠에서 깨어났다. 신탁을 받은 단어가 사라져버린 두루마리를 안고 진땀을 흘리던 꿈이 아직도 생생한데, 상형문자로 가득한 성경을 읽지 못해 쩔쩔매는 꿈이라니. 네가 잃어버린 것은 무엇일까? 네가 보지 못하는 것은 무엇일까?
너는 시계를 본다. 진술분석 의견서를 제출해야 할 날이었다. 그의 다정한 눈빛, 부드러운 음성, 사물에 대한 섬세한 감수성, 그와 몸과 마음을 섞고 지냈던 따뜻한 시간들은 그의 혐의를 부인한다. 네가 아는 그는 그런 사람이 아니다. 그러나 아이의 진술이 거짓이라고 할 만한 뚜렷한 근거가 없다. 아이는 솔직하고, 제게 유리한 진술인지 불리한 진술인지를 가려서 말하지도 않는다. 사리에 맞지 않은 대목도 있고, 암시가 작용했다거나 끼어든 기억이라고 추측되는 부분도 있지만 아이는 대체로 구체적인 정황을 묘사한다. 무엇보다도 아빠가 괴물로 변한다는 아이의 꿈이 네게는 그의 혐의에 대한 결정적 증거로 느껴진다.”(<진실> 중에서)
[ 출판사 서평 ]
이 책은 이인칭 소설의 서사적 효과가 미학적 성공을 거둔 창작 작품집이다. 여기에 실린 작품들은 독자를 수화자처럼 느끼게 하는 이인칭 대명사를 자연스럽게 사용하여 독자에게 인물의 생생한 감정과 활동의 순간을 체험하게 함으로써 주제를 설득력 있게 전달한다. 독자에게 아직은 낯선 형식인 이인칭 서사에 대한 이해와 상호주체적인 독서의 즐거움의 제공한다. 또한 단편소설이 시작되는 첫머리에 일러스트레이터 펀 그린의 삽화가 시작되어 소설의 시작을 알리는 장치를 두어 독자로 하여금 흥미를 끌 것이다.
[ 차례 ]
당신?
너의 경우
일박 이일
진실
거짓말
[해설] ‘너’라는 이름으로_장두영(문학평론가)
[ 지은이 이미란 ]
1983년 광주일보와 1985년 서울신문의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했으며, ≪꽃의 연원≫, ≪너를 찾다≫, ≪그림자 사랑≫, ≪네 손을 위한 소나타≫, ≪꿈꾸는 노래≫ 등 5권의 소설집과, ≪소설창작 강의≫, ≪소설창작 12강≫, ≪한국현대소설과 패러디≫ 등 3권의 저서, ≪오백 번의 로그인≫, ≪외국인 유학생을 위한 대학 글쓰기≫, ≪외국인 유학생을 위한 한국현대문학≫ 등 3권의 공저와, 공역서 ≪치유의 글쓰기(Writing as a way of healing)≫가 있다.
1997년 광주문학상, 2009년 광주일보문학상 수상.
현재 전남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도서명] 너의 경우
[지은이] 이미란
[펴낸곳] 예서
변형 국판(128×195) / 200쪽 / 값 10,000원
발행일 2021년 08월 30일
ISBN 979-11-91938-00-5 03810
분야: 문학>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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