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푸른 별에서 맺은 인연,
비밀의 숫자 만들어 아내에게 바치다
이 푸른 별에서 맺은 인연을 비밀의 숫자로 만들어 살아온 아내를 위한 시였고, 이는 함께 살아온 아내에게 바치는 헌사요, 훗날까지 살아가면서 늘 되새겨보는 말 없는 약속의 의미를 담은 사랑의 고백 같은 시집이 세상에 나왔다.
이 시집은 ‘가족이란 무엇일까, 인간이 왜 고향으로 회귀하려고 하는 걸까, 여행을 통해 나를 되돌아보는 시간은 어떤 의미일까, 삶과 죽음이 우리 삶에 미치는 영향은 무엇일까’ 등 나날살이(삶)의 원초적인 질문을 끊임없이 던지면서 만나는 소소한 일상을 시로 표현한다.
“비밀의 숫자를 누른다 / 이 별에서 처음 만나던 날을 / 날마다 당신의 기억을 누르며 들어간다 / 문을 열 때마다 / 함께 걸어온 길을 각인시켜 주는 비밀의 숫자 / 가끔, 문 앞에서 사랑을 생각하며 / 오랫동안 서성일 때도 있어라 / 슬픔을 닦아주지 못해서 / 더 살갑게 대해 주지 못해서 / 뉘우침으로 앉아 모과나무를 바라본다 / (중략) / 언제나 눈부신 별들아 / 안식을 찾아 들어올 때마다 / 너희들이 사는 세상에 네온사인 밝아도 / 문소리 그 기다림을 위해 / 잰걸음으로라도 서둘러 돌아오너라 / 사랑의 문을 열어라”(<비밀의 숫자를 누른다> 중에서)
아이들의 아버지요, 무뚝뚝한 남편으로 살아온 시인의 사랑 고백
아이들의 아버지요, 또 무뚝뚝한 남편으로 살아가면서 감정 표현이 서툴러 늘 사랑을 제대로 전하지 못한 일들을 표현한다. 아내가 친정을 걱정하는 애틋한 마음을 시에 담고 있는데, 그 마음을 고스란히 담은 시가 <아버지와 딸>이다. 시인은 이 시를 독자들에게 가장 소개하고 싶다고 한다. 인생의 황혼기에도 삶의 애잔함을 고스란히 몸으로 보여주는 것을 형상화한 작품이다.
“자식들 떠난 자리 / 또 쓸고 닦으며 기다며 살다 / 쓸쓸함을 덮고 있는 노을만 바라봅니다 / 내다보는 대문 밖 바람은 지나가고 / 기다리는 자식 같다며 / 좁쌀알 먹이로 놓아 / 날아온 참새들 바라보며 웃으신다 (…중략…) 홀로 가는 인생인데 / 그 좋은 술 한 잔도 마시지 못하신다며 / 건네주시는 한 잔의 서글픔”(32쪽)
윤동주 <서시> 한 편으로도 세상이 밝고 아름다워질 것이다
시인은 윤동주의 ‘서시’를 읽을 때마다 ‘삶이란 무엇인가? 어떻게 살아야 행복한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많이 자신에게 던진다고 한다. 시인이 연당(제비집)에서 매주 학생들이 우리나라 명시를 암송해서 발표하게 한 지도 어느덧 13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그 많은 아이들이 제일 좋아하던 시가 윤동주 시인의 ‘서시(序詩)’였고, 그 아이들의 풍경을 시로 담아 표현했는데, 그 시가 <서시를 읽다>이다. 시인은 훗날 우리 아이들이 윤동주의 ‘서시’ 한 편으로도 세상이 밝고 아름다워질 것이라는 강한 믿음을 가지고 있다.
“겨울이 다 녹고 / 제비가 날아온 이 땅 위에서 / 우리의 아이들이 당신의 서시를 노래합니다”
시인은 윤동주 시인의 <서시>를 차용하면서 학생이나 선생이나 도덕적 순결성을 지키면서 살아가야 하는가를 노래한다.
[시인의 말]
오랫동안 시를 찾아 길을 걸어왔으나 이제 느티나무 그늘에서 나를 살펴볼 때입니다. 처녀 시집 ‘별을 안은 사랑’ 이후, 길에서 만난 인연의 흔적들이 시(詩)가 되어 나를 응원하기도 하고, 반성하게 합니다. 이러한 시편(詩篇)들을 모아 ‘비밀의 숫자를 누른다’라는 제목으로 묶었습니다. 이 푸른 별, 이른 아침에 콘크리트 바닥 갈라진 틈에 금잔화가 피어 견고한 슬픔을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이 시집은 사랑의 시편, 뒤늦은 후회와 다짐, 고향 회귀, 여행의 체험, 또 어떻게 살고 싶은가? 등 원초적인 질문을 던지나 답을 구하지 못한 아픔을 5부로 묶어 세상에 내놓았습니다. 무척 부끄러우나 독자분들께서 이 시집을 읽으시고 위로의 강물에 발을 담갔으면 참 좋겠다는 깨알 같은 소망을 띄워 보냅니다.
[책 속으로]
아버지와 딸
어단리 정미소에서 피대를 감고
방아를 찧으며 살다가
이웃이 주는 정으로 사시다가
이제는 기침 쿨럭거리며 누워 있는 생
자식들 떠난 자리
또 쓸고 닦으며 기다리며 살다
쓸쓸함을 덮고 있는 노을만 바라봅니다
내다보는 대문 밖 바람은 지나가고
기다리는 자식 같다며
좁쌀알 먹이로 놓아
날아온 참새들 바라보며 웃으신다
저물어가는 삶에 어둠이 내리고
한세월 살다 보니 사는 게 다 꿈만 같으시다며
나 홀로 와 세상과 어울리다
홀로 가는 인생인데
그 좋은 술 한 잔도 마시지 못하신다며
건네주시는 한 잔의 서글픔
목이 메는 저녁 무렵
좁쌀 먹고 힘내어 날아가는 새처럼
오늘도 남아 있는 하늘은 눈부시기만 합니다
그 든든한 감나무 그늘에서
감꽃이었다가 감으로 익어가는 나이에
명절이라 찾아온 딸이
홍시 같은 아버지 곁에서
말랑말랑한 슬픔을 닦아 드리고 있습니다
만종
싱그러운 땅 위에 살아도
산다는 일 아침저녁으로 다르리라
허리도 펴지 못한 채
너른 들 끝없는 노동의 하루
일하다 쉴 수 있겠는가
저 아득한 곳까지 순한 기도로 가야 할 뿐
한낮 믿음으로 땀으로 심은 곡식들
이제는 그 시간이 익어
밭고랑 위에 쌓인 땀방울
이제 노동은 허리를 곧추세우고
괭이에 손을 얹어놓고 종소리 들으면서
사람은 저마다 기도를 올린다
충만한 땅을 사랑해서
행복하다고
용언의 힘 4
―닦는다
나이가 들면
연민이 바닥을 쓸게 되나 보다
함께 걸어온 길 바라보다
쌓인 뉘우침을 물에 담가놓고
밥그릇을 닦아주다가
내 사랑 그대
오랫동안 가난을 닦으며 살았구나
수세미로 더 살갑지 못했던 날들
미안함이 뽀득뽀득 소리 나게 닦는다
어제를 퐁퐁 흘려보내고
남아 있는 내일을 생각하며
맑게 흐르는 물처럼
더 많이 사랑하며 살겠노라
다짐을 한 컵
가슴속에다 붓는다
[출판사 서평]
고향의 마음을 담다
김태경 시인이 첫 시집 ≪별을 안은 사랑≫(북허브)을 출간한 후 틈틈이 써 온 시를 시인 강세환 작가의 소개로 ≪비밀의 숫자를 누른다≫로 제2시집을 출간하게 되었다.
김태경 시인의 시집을 준비하면서 눈에 들어온 것은 우선 시의 정갈함이다. 고향에 계신 부모 형제를 애틋하게 생각하는 마음이 잘 드러나고 있는데 시집 첫 번째로 나오는 ‘돼지감자’는 아마 고향에서 시인에게 가을에 채취한 돼지감자를 편으로 썰어 말린 것을 택배로 보냈나 보다. 이 작고 소소한 일상을 시인은 힘든 도시살이를 걱정하는 고향의 마음으로 읽어내고 시적으로 표현한 것이 눈에 들어와 아마 독자들이 그 다음 시가 궁금하게 여기지나 않을까 생각하는 시집이다.
김태경 시인의 할아버지는 일제강점기 시대에 수난을 겪으신 것 같다. ‘대마도’라는 제목의 시 속에서 할아버지의 슬픔, 면암 최익현, 덕혜옹주, 김인겸의 일동장유가 등 한 가족의 역사에서 민족의 역사까지 나아가는 모습에서 한편의 서사시를 읽은 느낌을 준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전하는 사랑 메시지
특히 시인의 말처럼 사랑하는 아내도 함께 인생을 살아가면서 늙어가는 아내를 애틋하게 바라보는 시인의 눈빛이 어쩜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진정한 ‘사랑’을 어떻게 찾아가는가를 일러주고 있다. ‘아버지와 딸’과 ‘중앙시장’을 통해 아내의 마음을 읽어내는 시인의 모습 속에서 사랑을 위해 섬세한 눈을 가져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반면에 살아오면서 삶에 지친 것은 시인뿐만 아니라 아내도 해당할 수 있다는 느낌, 잘못된 것을 후회하고 성찰하는 모습이 담겨 있는 ‘용언의 힘 4’에서 부제로 ‘닦는다’를 통해 “내 사랑 그대 / 오랫동안 가난을 닦으며 살아왔구나 / 수세미로 더 살갑지 못했던 날들 / 미안함이 뽀득뽀득 소리 나게 닦는다”를 통해서 그 진정성을 확인할 수 있다.
노동의 절망보다 희망을 노래하다
이 시집에는 중간 중간 노동시가 들어 있다. 지금까지 노동시들은 비교적 삶의 절망이나 비애가 많았는데, 김태경 시인의 시에서는 노동의 절망보다 희망이 많이 담겨 있다. 이는 노동을 대하는 시인의 태도가 다르기 때문일 것이다. ‘못으로’, ‘크림빵’, ‘만종’ 등을 읽으면 노동은 슬픔이 아니라 주어진 숙명이지만 이것을 대하는 삶의 자세로 변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사람은 태어나 이 지상에서 살아가는 동안 노동을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한 노동을 어떤 시각에서 바라볼 것인가를 생각하게 하는 시들이 좋다.
‘신라의 미소’를 통해 오랫동안 전해져 오는 수막새 기와를 감상하고 쓴 시나, ‘유리 가가린’을 통해 이 푸른 별에서 살아가는 생명을 우주 밖에서 조망하는 힘, 그리고 공존의 비밀을 생각하는 힘이 좋다. 특히 ‘백두산’을 통해 우리 민족의 아픔과 함께 우리 민족이 함께 화합하고 미래를 바라보며 나가야 한다는 것을 백두산의 기점으로 하여 시인의 꿈이 동서남북으로 힘차게 달려가는 것이 눈에 들어온다. 이 시집에서 가장 장시에 해당하지만 지루하지 않게 읽히는 것은 김태경 시인이 던져주는 메시지나 유려한 표현에서 지루하지 않게 읽을 수 있는 시적 힘이 실려 있기 때문일 것이다.
코로나 시기 이 시집이 힘겨움을 이겨나가는 데 도움이 되길 바라...
김태경 시인의 시집 ≪비밀의 숫자를 누른다≫(예서의시016)를 통해, 코로나19로 인해 힘든 이 시기에, 시가 주는 힘을 만나고, 힘겨움을 이겨나가는 데 있어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길 바란다. 그래서 이 시집을 편집자로서 독자들에게 강력히 추천한다.
[ 차례 ]
천착(穿鑿)
제1부
돼지감자 / 팔순 잔치 / 시제를 지내다 / 첫발 / 새벽 두 시 / 추석 / 요하넥스에서 온 전화 / 편지 1 / 편지 2 / 편지 3 / 비밀의 숫자를 누른다 / 뽕나무 아래에서 / 중앙시장 / 만과봉(萬科峰) / 아버지와 딸 / 세 여자 / 잠꼬대
제2부
남도의 바다 / 봄날 / 영주 호미 / 사전 투표 / 엿장수 / 눈이 내리는 날 / 명동명품사 / 홍매화 / 오월의 편지 / 맨발 / 신축 현장 / 자갈치 시장 / 삼일절 / 용언의 힘 1 / 용언의 힘 2 / 용언의 힘 3 / 용언의 힘 4
제3부
묵호항 / 아버지의 어깨 / 소식 / 늦은 후회 / 가는 길 / 자정 / 속초행 / 백두산 / 청마 문학관 / 묵상 / 개미의 행렬 / 못으로 / 플라타너스 / 길 잃은 양이 되어 / 칼갈이 노인 / 채송화 / 크림빵
제4부
봄날의 밥상 / 영광서점 / 투병시 / 들꽃 / 만종 / 덕혜옹주 / 서시(序詩)를 읽다 / 시가연에서 / 낮잠 / 늙은 소 / 자화상 / 어떤 날 / 엉겅퀴 / 두물머리 / 오금역 / 고희연(古稀宴)에서 / 발치 / 아름다운 강산
제5부
신라의 미소 / 길상사 / 적멸보궁 / 심우장 / 반가사유상 / 수종사 / 밤길 / 해우소 / 방하착 / 개심사 / 유리 가가린 / 만다라 / 찬방에 앉아 / 망우리 / 화두
[인터뷰] 삶의 풍경 혹은 사유(思惟)의 풍경
[ 지은이 김태경(金泰卿)]
1962년 강원도 평창군 진부면에서 태어났다. 2009년 5월 ‘모던포엠’ 5월호에 <세탁소> 등 3편을 발표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는 등단 10년 만에 처녀 시집인 ≪별을 안은 사랑≫을 출간하였고, 제5회 박재삼 문학상을 받았다. 현재 한국문인협회 회원이며, 강동 문인협회, 평창 문인협회에서 활동을 하고 있으며 대학입시학원에서 국어와 논술을 강의하고 있다.
[도서명] 비밀의 숫자를 누른다
[시리즈] 예서의시 016
[지은이] 김태경
[펴낸곳] 예서
이메일_mykungjin@daum.net
전화번호_070-7550-7776
팩스_02-806-7282
변형 국판(128×210) / 154쪽 / 값 10,000원
발행일 2021년 07월 07일
ISBN 979-11-968508-7-6 03810
분야: 문학>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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