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론도 대안도 없는 사회를 향한 단상(斷想)
강세환 시인의 신작 산문집이 출간되었다. ≪그래도 시와 정치를 위하여≫(예서) 책 제목에서 보듯이 시와 정치에 대한 사유의 스펙트럼이 생각보다 넓고 크다. 그러나 한국 시는 담론이 사라졌고 한국 정치는 대안이 사라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인 특유의 ‘열정과 통찰’과 ‘담론과 대안’을 곳곳에서 읽을 수 있다. 작가의 안목과 역량을 또 한 번 짐작하고도 남을 것이다.
권두의 시작하는 말을 보면 ‘아무짝에도 쓸데없는 잡생각’ 운운 했지만 시에 대한 사유는 소위 ‘아버지의 언어’에 대한, 또 과거의 언어와 문법에 대한 반성과 부정적인 입장일 것이다. 그 반성과 부정은 또 많은 침묵 혹은 고민의 결과물일 것이다. 모처럼 생각하는 맛과 읽는 맛을 동시에 맛볼 수 있다. 6부로 나눈 85편의 단상은 시와 한국 사회에 대한 색다른 수상록(隨想錄)이 될 것이다.
[ 작가의 말 ]
그때그때 한 단어가 떠오르면 그 단어를 또 한 문장이 떠오르면 그 한 문장을 쳐다보듯 급하게 썼다. 중언부언하듯 동어 반복하듯 썼다. 운이 좋았다. 매일 아침마다 한 단어가 찾아왔고 또 한 문장이 찾아왔다. 고맙다. 아주 가끔 손끝에 닿던 동도제현의 시 한 구절도 고맙다. (...) 한 달여 전 시집 최종 교정본을 넘겨놓고 그 다음날부터 돌아앉아서 썼다. 어떤 쓸쓸함이 먹구름처럼 몰려왔고 그것을 피하기 위해 쓴 것도 같다. 어떤 침묵을 한 번 더 침묵하기 위해 매달린 것도 같다. 비록 사적이지만 그 침묵이 고맙다. 그 공백도 그 가벼움도 고맙다. (강세환)
[ 책 속으로 ]
“어떤 추억도 없이 역사도 없이 아무것도 없이 걷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저녁 강을 향해 걷고 있었다. 그러나 어두운 강 그 너머를 향하고 있었다. 강을 건넜다. 저쪽 강변길도 눈에 익었지만 입간판으로 길을 막아놓았다. 천천히 우회하여 카페에 들어갔다. 낯익은 곳이다. 벽면의 유화 속 자작나무들과 눈이 마주치자마자 나무 허리쯤이 흔들리는 것 같다. 아님 내가 먼저 흔들렸다는 것인가. 걸으면서 또 되돌아오면서 나는 줄곧 뭔가 되뇌고 있었다. 이를 테면 시인인 듯, 시인이 아닌 듯, 외곽, 낯섦, 일탈, 방황, 통념, 세계, 침묵, 모호함, 시보다 시적인 것, 유혹, 강박증, 과거, 언어, 문법, 시, 반복, 가벼움, 부정, 비현실, 사유(思惟), 새로움, 혁명, 변혁, 권력, 아웃사이더, 역사, 지식, 인식, 고통, 편견, 폭음, 폐허, 픽션, 혼돈, 환상, 히스테리아….”(182~183쪽)
[ 출판사 서평 ]
시는 사라졌고 정치는 실종되었다. 시의 담론도 사라졌고 정치적 대안도 실종되었다. 담론도 대안도 더 이상 재생산되지 않을 것이고 그렇게 흘러 갈 것이다. 특히 문학을 비롯한 예술의 모든 영역은 더 혹독한 곤경에 빠질 것이 뻔하다. 이것은 부정도 아니고 비관도 아니다. 세월이 그렇게 흐르고 시대가 그렇게 변해가고 있다. 그런 것을 또 대세라고 하지 않았던가. 아무튼 시의 시대도 정치의 시대도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삶을 살아내듯이 그런 시대를 겪어내야 할 것 같다.
다행히 잠시 침묵하고 사유할 수 있는 공간이 생긴 것 같다. 이른바 공백이 생긴 것도 같다. 어쩌면 이 산문집은 수상록이거나 에세이가 아니라 시와 정치를 향한 ‘침묵과 사유’의 기록물일 것이다. 그렇다고 또 소위 담론이나 대안도 아니다. 그것은 작가가 의도한 것이 아니다. 굳이 비유적으로 말한다면 어디에 도착하기 위한 여정이 아니다. 그냥 사유와 침묵만 있을 뿐이다. 예컨대 비대상이다. 다만, 무엇을 그토록 반복하고 있었는지에 대한 반성이다. 보라! 그 반성과 비대상은 또 무엇을 향하고 있는가.
[ 차례 ]
[ 1부 ]
시작하는 말/ 꽃/ 당신/ 공백/ 번외/ 실패/ 오늘 하루/ 11월/ 불면/ 안목/ 노벨문학상/ 무수천 산책로/ 망대골목 같은/ 전업 작가/ 미니 샌드 케이크
[ 2부 ]
나지막한 나의 고백/ 침묵은 침묵을 반복할 뿐이다/ 시인 아닌 듯이 살아야…/ 과정/ 자유시/ 싸울 줄도 모르면서/ 돌풍이 불어도/ 삼전동/ 동일시/ 긍정과 부정 사이 1/ 긍정과 부정 사이 2/ 퇴직 이후/ 텅 빔/ 자축/ 소회
[ 3부 ]
비대상/ 서울시 교육감 보궐선거/ 개인주의/ 정견/ 김종삼/ 사물/ 덩그렇게 혼자 남은 이 외로움이야말로/ 밑 빠진 독 같은/ 그는 막 잠이 들었지만 나는 잠이 오지 않았다/ 시의 자리/ 어제와 오늘의 시/ 자꾸만 작아지는 나의 생각/ 나는 무엇을 반복하고 있는 걸까/ 독립 시인/ 저녁 일곱 시
[ 4부 ]
사회적 목적/ 인제양양터널/ 터닝 포인트/ 조금 더 멀리/ 새로운 것 혹은 다른 것/ 시인의 말/ 시와 로또/ 문학사도 없고 역사도 없는 시대를 이 공백의 시대를 살아내야 한다는 것/ 어디서 무엇과 작별해야 하는가/ 맹목적인 것과 무목적인 것/ 단순한 삶/ 시보다 시적인 것을 위하여/ 2024년 11월 2일 혹은 파편들/ 쓸데없는, 변명 따위 같은 것/ 고정관념의 힘과 허구의 힘
[ 5부 ]
나는 누구인가/ 단절 그리고 침묵/ 시에 관한 사유/ 지금 여기/ 끝없는 번뇌/ 어느 날 김근태 기념 도서관을 나오며/ 아무것도 아닌 듯이/ 아무것도 원하지 않는 삶/ 농담/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말이겠지만/ 이 산문집에 대한 소회/ 무제/ 나는 나의 과거를 부정할 수 있는가/ 독자/ 허구와 사실과의 관계
[ 6부 ]
삶은 다큐인가 픽션인가/ 그때그때 급하게 혹은 즉흥적으로/ 생각을 줄이자/ 손의 미덕/ 필연보다 우연을/ 걷기-죽림동성당/ 무의미한 것/ 꿈이요 환상이요 헛꽃인 것을/ 이 세계 밖에서 흔들리는 것(들)/ 그래도 시와 정치를 위하여
작가의 말
[ 지은이 강세환 ]
시인
강원도 주문진 출생. 1988년 ≪창작과비평≫ 겨울호를 통해 작품 활동 시작함. 시집 ≪풍경과 심경≫ 등과 산문집 ≪시의 첫 줄은 신들이 준다≫(전 2권) 등 있음.
[도서명] 그래도 시와 정치를 위하여
[지은이] 강세환
[펴낸곳] 예서
변형 국판(128×210) / 196쪽 / 값 15,000원
발행일 2024년 12월 30일
ISBN 979-11-91938-82-1 03810
분야: 문학 > 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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