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모든 삶에 대한 고백이 담긴 기도문
<세월호, 아직 끝나지 않는 기도>
시집 ≪세월호, 아직 끝나지 않는 기도≫는 세월호 참사뿐 아니라 역사 속의 반복되는 슬픈 기억은 여전히 끝나지 않는 현재 진행형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 시집은 우리 모든 삶에 대한 고백이 담긴 기도문이다. 세월호 참사 이후에 모아둔 시들을 공유하며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아직도 희망이 있다는 것과 여기에 뜻을 같이 하는 사람들이 합류한다면 더 나은 세상, 모두가 함께 하는 세상을 만들어 갈 수 있음을 시인은 보여주려 한다.
시인은 그 시대를 노래하는 사람이다.
책을 펼칠 때 처음으로 만날 수 있는 시가 <개미의 하관(下棺)>이다. 우리 인생이 결국에는 그렇게 끝맺음을 향해 달려가는 생임을 읽는 독자들이 알았으면 한다. 우리의 생도 끝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오늘 주어진 하루가 소중하고 맞이하는 자세가 다를 것이다. 개미는 가볍게 여길 수도 있는 작은 미물에 불과하다. 그러나 개미의 행동을 관찰해보면 배울 점이 많다. 무리를 지어 생활하며 어려운 일을 함께 도와 해결한다. 그리고 겨울을 위해 부지런히 양식을 준비하는 것과 깨끗이 지상의 모든 것들을 청소해주고 정리해주는 작지만 많은 교훈을 사람들에게 준다.
1부는 세월호 참사와 관련한 시들로 구성되어 있다. 이 땅에는 수많은 역사적인 사건들 그리고 그 안에 민족의 아픔이 있었다. 세월호도 그 중 하나다. 세월호 참사는 잊지 말아야 할 민족의 슬픈 역사다. 그래서 1부는 세월호에 대한 기도문이며 참여시라 할 수 있다. 기도는 누군가를 생각나게 한다. 그들의 유산을 기억하게 한다. 남아 있는 사람들의 흔적과 떠나간 이들의 삶의 자취를 생각해보면서 촛불, 일몰, 흔적, 바다, 강, 서울의 어느 거리에서 만나는 이들, 앞으로 나아가려는 자들과 함께 했던 소중한 시간을 이야기한다.
2부는 광화문이다. 광화의 뜻은 ‘빛으로 세상을 다스린다.’는 의미다. 우리 사는 세상은 여전히 어두운 곳이 존재한다. 아직도 그 속에서는 우리의 이웃들이 거친 삶에 맞서 살아가고 있다. 그들이 빛 가운데로 함께 나아와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로 만들어 나아갔으면 하는 간절한 바람이 있다. 2부에선 빛으로 다스리는 세상은 다시 태어나라는 희망의 메시지로 가득하다. 부활, 진리에 대한 깨달음, 바람, 삶의 애착이 강한 이름 없는 들풀, 믿음은 우리의 숨은 양심을 깨운다.
3부는 오월, 어린이, 노인, 안개, 강아지, 고양이, 수몰지구, 벚나무, 인연, 강물 등 여러 시어들과 만날 수 있다. 주제는 오월, 어느 날이다. 지은이의 경험과 만났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장난감을 손에 쥔 아이의 눈에는 언제나 미래에 대한 기대로 가득 차 있다. 어린이부터 시작하여 공원의 노인들에 이르기까지 봄을 기다리는 할머니의 마음, 그들 모두 잡히지도 않을 나비를 쫓는 고양이와 같다. 수몰된 지역에서 봄을 기다리는 사람들, 모두 하나의 인연처럼 서로의 이야기는 닮아 있었다. 살펴보면 인연 아닌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 그 사람의 인생길을 따라가다 보면 모든 강에는 발원지가 있듯이 우리 인생도 처음이 있었고 모두 같은 끝맺음이 있다. 강은 바다로 흘러간다. 바다는 강의 종착지다. 바다에서 만난 사람들도 우리보다 먼저 가서 기다리고 있는 것뿐이다.
4부는 살아남은 자의 고뇌다. 해녀, 민들레, 길, 유언, 한(恨), 부음, 마을, 나무 등의 시어들을 만날 수 있다. 살아남은 자의 슬픔 역시 뼈가 시리도록 아픈 기억을 늘 함께 해야 한다. 삶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치유와 회복을 의미한다. 기억하기 위해 기록해야 한다. 인생 전부는 우리의 유언이라 할 수 있다. 어떻게 살았느냐가 그 이후의 삶을 결정한다. 살아있는 모든 것들의 부음과 유언들은 오늘도 어느 누구를 지상에서 그 존재를 확인하여 준다. 그리고 이것들은 지울 수 없는 문자로 새겨진 이 땅에 살다간 모든 이들의 흔적이다.
5부에서 만날 수 있는 시어들로는 징검다리, 산, 간이역, 섬, 경기자, 장마, 탄광, 목마 등이다. 서로를 연결하는 구도이다. 두 가지 세계, 이곳에서 저곳으로 건너야 하는 자들의 순례 이야기다. 목적이 없는 과정은 존재하지 않듯이 모든 곳에는 저마다 아름다운 이야기를 가지고 있다. 어떠한 믿음도 사치가 아니다. 나에 대한 소중한 기억은 또 다른 이들의 이야기다.
1부에서 5부에 이르기까지 80여 편의 시를 접하면서 서로의 상처를 보듬어주고 함께 치유하며 앞으로 나아가는 시간이 되기를 바란다.
[ 시인의 말 ]
그 해 겨울은 얼어붙은 땅이 불로 녹여져 새로운 생명이 나오려 하는 계절이었네. 떠난 줄 알았던 이들이 다시 돌아와 우리 곁에서 다 자란 아름다운 청년이 되어 있었지. 우리는 반드시 기억해야 하네. 언제나 삶은 아름다웠고 누구에게나 소중한 사람이었음을, 여기 그들의 이야기가 있네. 마음속 깊은 성전에서 들려오는 그들의 기도소리와 우리들의 이야기가….
[ 책 속으로 ]
<개미의 하관(下棺)>
저리도 복잡한 땅 구멍 속에서 활활 타오르는 기개를 보았는가, 지하의 세계에서 뿜어져 나오는 열기에도 한겨울과 여름에도 세우고 무너뜨리고 아버지도 할아버지도 어머니도 강아지도 산산이 부서져 데리고 들어간 저 어둡고 컴컴한 곳에서, 흙 속에 가지를 치며 넉넉히 자라가는 무서운 모습에 내 누울 관도 내어주고, 몸뚱이마저도 내어줄 것이니, 버리고 떠나지 못하는 지상의 모든 생물들에게 하관(下棺)을 위한 당신들의 지칠 줄 모르는 용기를 가르쳐주시지 않겠습니까
검은 미물들이여
<세월호 아직 끝나지 않는 기도>
주님, 금년 봄에는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시나요
아직 저들을 모두 만나보지 못하였는지
선홍빛 바다 위에 뿌려진 저 무수한 시간들을 세어보지 못했는지
사마리아 고개 길을 다 오르지 못해
강탈당한 푸른 청춘의 넋이 아직 저기에 있는데
두 손을 들어 기도를 하여도
두 손을 모아 기도를 하여도
두 손을 저어 떠나간 영혼들을 다시 불러 영원한 당신의 나라
안식의 대지 위에 모실 수만 있어도
고요한 이 항구에 304개의 은촛대를 세워
밤하늘 붉은 바다에 떠있는 살아있는 모든 것들을 향한 등대가 되겠나이다
망언의 바다에선 그들이 보입니다
저 허영의 사제들과
석회를 바른 무덤가에서 살아가는 삯군과
그 끝을 모르는 이단의 거짓말과
산에서 숨어 지내는 우상의 그늘과
비릿한 판관들의 웃는 소리를 들어봅니다
늦은 밤이 되어도 항구로 돌아가지 않는 갈매기의 자취를 따라
포말 위에 지워지지도 않을 이름 새겨봅니다
주님, 이제는 이 긴 기도문을 읽어 내려갈 수 없습니다
당신께서 이곳에 우리를 가두어 놓으셨습니까
깊은 바다 속 심연, 부딪혀 뿜어져 나오는 거센 물바람에도
이곳의 파도는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습니다
이곳에서 먼 곳 팽목항에서 들려오는 발을 구르는 소리를 들어보아도
슬픈 진혼의 소리를 모두 실어 나를 수 없습니다
아직도 윗목 차가운 자리에서
촛불의 촛농이 눈물로 변해 흘러내릴 때까지
기다리시는 어머니의 나지막한 기도소리를 들어봅니다
우리는 누구를 위로할 수 없습니다
아직 나의 기도가 끝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항구로 돌아가지 않는 기나긴 줄을 바라볼 뿐
당신은 지금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고 있는지요
주님,
투쟁과 싸움의 함성 속에서 섬기는 교회를 찾을 수 없습니다
무서운 폭력과 미움 속에서 예언자적인 교회가 되지 못했습니다
희망이 없는 세상에서 희망을 주지 못한 교회가 되었습니다
공포의 감옥에서 해방되지 못한 교회가 되었습니다
협박과 침묵을 강요하는 세상에서 증인으로서의 교회가 되지 못하였습니다
고난 속에서 죽음을 강요하는 세상에서 해방하는 교회가 되지 못하였습니다
실패와 실망 속에서 믿음을 주지 못하는 교회가 되었습니다
아직 기도는 끝나지 않았습니다
이 바다에도 붉은 진달래가 피어오를 때까지
나는 이 기도를 고이 접어 떠나지 않는 종이배로
이곳을 유영(遺詠)하며 4월 식지 않는 봄을 맞이하겠나이다
[ 출판사 서평 ]
좋은 책은 선한 영향력을 미치며 그 가치와 기여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희망의 열매로 나타난다. 오염된 땅에서는 좋은 열매는 기대할 수 없다. 좋은 땅에서만 좋은 열매가 난다. 좋은 책을 써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세상에는 수많은 책들이 매년 쏟아져 나온다. 그 책들 속에는 어떤 것은 버려야 할 것들이 많다. 책은 삶을 이야기하고 해석하고 적용한다. 책들 중 아름다운 시어들로 이루어지는 시는 인류 최초의 문학 양식이다. 그때부터 시는 인간의 삶을 요약하며 풍성한 가치를 추구하는 데 기여하고 있다. 그리고 시는 무엇을 말하여야 하는지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를 결정한다. 삶의 진정한 의미에 응답하지 않는 글은 사람들의 생각을 복잡하고 어렵게 만든다. 그런 글들을 거부한다. 삶의 의미에 잘 응답하기 위해 다양한 시어들로 시를 쓰고 시인의 경험을 이 책에 담았다.
이 시집은 전체 5부로 이루어진 시집이다. 세월호와 광화문 거리에서 만나는 사람들 그리고 오월, 살아남은 자들의 이야기들로 구성되어 있다. 특히 세월호에 대한 간절한 소망을 담아 살아남은 자들이 모여 기억을 함께 하며 어두운 세상을 촛불로 밝혀 아직도 이 땅에는 희망이 남아 있음을 알리고자 한다. 아직도 그 날을 잊지 못하는 이들이 세상에 남아 있다. 생의 끝을 놓지 못해 망설이는 사람들도 있다. 모두에겐 그들만의 이야기가 있다. 그들의 이야기를 정제된 시어들로 만들어 이 시집에 담았다.
“고요한 이 항구에 304개의 은촛대를 세워/ 밤하늘 붉은 바다에 떠있는 살아있는 모든 것들을 향한 등대가 되겠나이다”(<세월호 아직 끝나지 않는 기도> 중에서)
[ 차례 ]
개미의 하관(下棺)
제1부 눈 내리는 밤
세월호 아직 끝나지 않는 기도/ 눈 내리는 밤/ 일몰/ 흔적/ 저물어 우는 강/ 겨울 바다/ 무명시인의 시집/ 미어켓 가족/ 지하도 Y 선생/ 빛무리/ 11월 26일 5차 촛불집회/ 촛불(광화)시민혁명 1/ 부고/ 촛불(광화)시민혁명 2/ 길고양이/ 그들을 보았다/ 산행/ 진군
제2부 광화문
강아지 울음/ 부활의 아침/ 어떤 깨달음/ 응답하라 1987/ 혹고니/ 바람의 무게/ 가을밤의 상념/ 금강보 1/ 가을단상/ 낙엽/ 들꽃에도 향기가 있다/ 광화문/ 명함/ 어떤 믿음/ 서울역 1980/ 나의 팔금(八禁)/ 폐지 줍던 할머니/ 갈증
제3부 오월 어느 날
어느 세일즈맨의 죽음/ 가위/ 노인들/ 오월/ 장난감 우주선/ 거울/ 연무(煙霧)/ 그림자/ 밀회/ 강아지와 나/ 할머니와 봄/ 대봉감/ 청서(靑鼠)의 변(辯)/ 동복댐/ 금강보 2/ 벗나무에 드는 생각/ 인연(因緣)/ 나비를 쫓는 고양이
제4부 살아남은 자의 고뇌
만추(晩秋)/ 해녀이야기/ 민들레/ 살아남은 자의 고뇌/ 환절(換節)/ 굽은 길/ 평사리/ 평사리 고양이/ 해류/ 처소 안의 각(角)에 대하여/ 동물농장/ 유언/ 응어리 한(恨)/ 어느 부음(訃音)/ 백사마을/ 고사목(枯死木)/ 설날 아침
제5부 회전목마
여배우는 죽어야 한다/ 징검다리에 대한 추억/ 산에 오르면서/ 간이역에서/ 입관/ 탈각(脫殼)/ 4월 중순 즈음에/ 철인경기/ 블록 맞추기/ 이혼(離婚)/ 장마전선/ 화순 탄광/ 회전목마
[인터뷰] ‘세월호’를 위한 진혼가
[ 지은이 한용재 ]
대학과 대학원에서 영문학, 법학, 신학을 공부하였고 미국, 네델란드, 캐나다, 한국에서 사회적 약자들을 위해 지금까지 연구하고 활동하고 있다. 세월호 참사에 대한 시를 발표하기도 했고 지난 정부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이후 캐나다에서 활동하였다. 기억하고 기록하기 위해 지금도 글을 쓰고 있으며 광주전남작가회의 작가지에 3편의 시를 통해 문단 활동을 시작하였다.
영문 중단편소설로 ≪Refuge Ali(난민 알리)≫, ≪The Hasting street(헤이스팅스 거리)≫, ≪Swine Fever(돼지열병)≫를, 영문 시집으로 ≪Refuge(난민들)≫, ≪Wetland city(습지도시)≫, ≪Gastown(개스타운)≫, ≪Space(공간에서)≫, ≪The Old Memories of Tynehead(타인헤드에 대한 오래된 기억들)≫를, 한국어 시집으로 ≪슬로시티≫를 출판하였다.
광주전남작가회의
캐나다 중앙도서관(LAC) 작가
Poetry Nation 동인
jea23@hanmail.net
[도서명] 세월호, 아직 끝나지 않는 기도
[시리즈] 예서의시033
[지은이] 한용재
[펴낸곳] 예서
변형국판(128×210)/ 164쪽/ 값 12,000원
발행일 2024년 07월 10일
ISBN 979-11-91938-76-0 03810
분야: 문학 >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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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 ≪세월호, 아직 끝나지 않는 기도≫는 세월호 참사뿐 아니라 역사 속의 반복되는 슬픈 기억은 여전히 끝나지 않는 현재 진행형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 시집은 우리 모든 삶에 대한 고백이 담긴 기도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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