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인문사회/한국학자료

한글독본(鄭寅承 編)(근대독본총서 8)

by 양정섭 2020. 10. 26.

일제강점기 근대에 침전된 다양한 정치적・문화적 위계의 흔적들을 보존


독본讀本은 편찬자가 ‘정수精髓’라고 여기거나 ‘모범模範’이 될 만하다고 판단하는 글을 뽑거나 지어서 묶어 놓은 책이다. 따라서 편찬자의 의식과 입장에 따라, 겨냥하는 독자에 따라 그 주제와 범위를 달리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편찬될 당시의 일정한 담론과 지향이 독본의 체재와 내용으로 반영된다.

독본讀本은 태생적으로 계몽적 성격을 띤다. 근대 담론이 형성되던 일제강점기 조선에서는 그 성격이 더욱 농후하다. 독본은 ≪國民小學讀本≫(1895) 이래 제도적 의미와 표준적 의미를 갖는 교과서로서의 역할을 담당하였고, 근대 지知를 보급한다는 목적 아래 단일하지 않은 성격의 텍스트가 혼종되어 있었다. 또한, 독본에 실린 글들은 읽기의 전범일 뿐만 아니라 쓰기의 전범이기도 했다. 즉, 독본이라는 형식을 띠고 있는 책들은 우선 그 안에 담긴 지식과 사상을 흡수하게 하려는 의도를 지니지만, 그와 동시에 선별되거나 창작된 글들은 그 자체로 문장 형식의 전범이 된다는 점에서 자연스럽게 쓰기 방식을 습득하게 하는 역할을 담당했던 것이다.

근대 독본은 교육과 연계되는 제도화의 산물임을 부정할 수 없다. 특히 읽기와 쓰기의 규율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문범화의 기초를 제공한다. 이와 같은 제도화 및 문범화란 독본의 편제 그 자체를 통해 독자에게 내용을 전달하는 방식을 만들어 냈다. 그런데 적극적인 의미 부여나 해설을 통해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영역임을 할당・배분・강조하는 양상이 1920년대 이후부터 뚜렷해진다. 실제로 1920년대 독본의 양상은 근대적 글쓰기 장場에서 하나의 문범文範 혹은 정전正典을 제시함으로써 넓은 의미의 근대 지知를 전달하는 표준적 매체로 기능하는 데 그치지 않고, 자기갱신을 통해 철자법, 교육령, 성장하는 대중독자와 적극적으로 교직하면서 문학적 회로回路를 개척해 나갔다.

한편 독본은 그 자체로 당대 독자들의 욕망을 재구성한 대중적 양식이다. 특히 구성되고 확산되는 방식에 있어 더욱 대중적이다. 이는 독본이라는 텍스트가 갖는 생산성이라 명명할 수 있을 것인바, 텍스트가 궁극적으로 창출하는 문화・상징권력까지도 포함한다. 또한 독본이란 역사적으로 볼 때 새로운 학문이나 분야를 축조하는 문화적 양식이라고 할 수 있다. 축조의 과정은 텍스트의 구성 과정과 더불어 독본의 반영성을 드러내 준다. 정전正典, canon의 문제가 야기되는 것도 바로 이 지점이다.

이렇듯 독본讀本, 나아가 작법作法 및 강화講話류는, 역사적으로 특수한 여러 문화 지형들을 반영하고 있으며, 일제강점기 근대에 침전된 다양한 정치적・문화적 위계의 흔적들을 보존하고 있다. 문학 생산의 조건, 문학의 사회적 위상, 나아가 문화의 동학動學을 텍스트 안팎의 형식으로 우리 앞에 제시한다. 이것이야말로 독본이라는 창窓이 갖는 근대문화사적 의미다. 독본이라는 창窓을 통해 일제강점기 근대를 살피면 텍스트 자체의 방대함 이면에 숨은 근대의 다종다기한 모습을 만나게 된다. 어떤 점에선 방대하기 이를 데 없으며, 또 어떤 점에서는 지엽적일 뿐인 여러 지점들은 문화론적 지평 안에 호명되는 순간 하나하나의 의미로 재구성된다.

이번에 추가하는 3권의 총서는 2년 전 출간한 것과 색다른 점이 있다. 1차분이 ‘좋은 문장’을 기준으로 선별된 문학의 전사前史를 보여 준다면, 2차분에서는 다양한 기준으로 분기된 독본의 진화 양상을 문화사文化史의 맥락에서 확인할 수 있다. 3차분은 해방 이후 독본 가운데 새로 발굴한 것과 아직 학계에 널리 알려지지 않은 것들을 우선 엮었다.

그 사이 ‘근대 독본’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관련 연구도 늘었다. 문학작품이나 신문 잡지 너머 떠돌아다니던 텍스트들이 근대 출판의 측면에서, 근대적 서간의 측면에서 다뤄지고 있다. 나아가 해방 이후의 독본 자료를 본격적으로 정리하기에 이르렀으며, 문학교육이나 근대의 교과서를 다루는 장에서도 주목받고 있다. 모쪼록 새롭게 추가된 총서가 이러한 연구에 작은 보탬이 되었으면 한다.



해방 후 조선어학회와 국어 교과서의 연관성, ≪한글독본≫의 특징


해방기 국어 교과서의 편찬 방향 및 그 시대 국어 교과서가 지녔던 지향을 확인


정인승의 ≪한글독본≫은 정음사에서 발간한 ≪부독본총서≫ 1권으로 1946년 3월에 간행되었다. 정음사의 ≪부독본총서≫는 “교재난을 타개키 위하여(최영해, <사축동잡록>, ≪근대서지≫ 9호, 근대서지학회, 2014.6, 148쪽)” 기획된 것으로, 전체 6권으로 구성되어 있다. ‘부독본’이긴 하지만 ‘교과서의 보조 수단’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었을 것이다. ≪부독본총서≫ 2권은 ≪우암선생계녀서≫(이재욱 서), 3권은 ≪조선시조집≫(최영해), 4권은 ≪조선속담집≫(김원표), 5권은 ≪조선어철자편람≫(김병제), 6권은 ≪중등문범≫(박태원)이었다. 본 근대독본총서에는 ≪한글독본≫(정인승)과 ≪중등문범≫(박태원)이 포함되었다.

≪부독본총서≫(정음사)와 그 안에 포함되었던 정인승의 ≪한글독본≫이 가진 의미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해방 직후 국어 교과서의 상황과 조선어학회와의 연관성을 이해해야 한다. 해방 직후의 선결 과제는 국가 건설이었다. 이때 가장 중요한 문제로 대두된 것이 국어의 수립이었다. 미군정청에서 1945년 9월 17일에 발표한 일반명령 제4호에는 “산수나 이과 교과목 이외에는 일본 교과서 사용을 금지”한다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었다. ‘국어’는 민족정신의 반영으로 일컬어지는 만큼 국어, 교육, 교과서의 조합은 국민의 형성에 필수적인 것이었다. 국어 혹은 국어 정신을 교육을 통해 확립・확산시킬 수 있는 방법은 국어 교과서를 통해서인데, 조선어 교육 축소 및 금지를 기조로 하였던 식민지 교육을 오래 거치게 되면서 제대로 된 국어 교과서가 만들어져 있지 못한 상황이었다. 갑작스러운 해방은 국어 교과서의 편찬을 시급하게 요청하였고, 이에 따라 해방 직후의 출판 시장은 국정 및 검인정 교과서, 부교재 형태의 출판이 활황을 이루었다.

한글 위주의 문학 편제, 민족의 생활 및 문화를 알려 민족성을 구성하려는 의도, 그리고 일제강점기 때 제정된 한글맞춤법과 표준어 규정을 환기시키는 형태이다. 이러한 구성과 편제가 ≪한글독본≫ 자체를 만든 원리가 되었다.

따라서 ≪한글독본≫을 통해 해방기 국어 교과서의 편찬 방향 및 그 시대 국어 교과서가 지녔던 지향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 목차 ]


일러두기

총서를 내며: 독본이라는 근대의 창(窓)

해제: 해방 후 조선어학회와 국어 교과서의 연관성, ≪한글독본≫의 특징


1. 이순신 어른(史話)

2. 조선 학생의 정신(修養)|도산

3. 한 냥을 들여 서 푼을 찾음(古談)

4. 쌀알 한 개(讀本)

5. 화가 유덕장(古談)

6. 어린 용사(童話)|소파

7. 나귀의 꾀(寓話)|이소프

8. 재미있는 이야기(漫談)

9. 확실한 대답(西洋 古談)

10. 콜룸부스의 달걀(西洋 古談)

11. 속담(俗談)

12. 수수께끼

13. 애국가(歌謠)

14. 한글 노래(歌謠)|고루

15. 어릴ㅅ 적 마음(新詩)|노산

16. 구멍 뚫린 고무신(童話)|여심

17. 우스운 참새들(漫筆)

18. 조선 청년의 용단력과 인내력(修養)|도산

19. 먼저 나를 찾겠소(修養)|호암

20. 그 아버지와 아들(隨筆)|최원복

21. 우리 집 정원(隨筆)|춘성

22. 만물초(紀行)|양봉래

23. 물(隨筆)|상허

24. 백두산 가는 길에(時調)|수주

25. 봄ㅅ비(時調)|송아

26. 가을(時調)|가람

27. 십이 폭(時調)|노산

28. 노력(詩)|번역

29. 조선의 맥박(詩)|무애

30. 봄의 선구자(詩)|여수

31. 들(詩)|임화

32. 봄(詩)

33. 계절의 맑은 놀이(詩)|구보


붙임(附錄)

원전



[ 엮은이 ] 구자황(具滋晃)


성균관대학교 국어국문학과, 동 대학원 졸업(문학박사)

현재 숙명여자대학교 교양교육원 교수

주요 논저로 <독본을 통해 본 근대적 텍스트의 형성과 변화>, <최남선의 ≪시문독본≫ 연구>, <근대 독본의 성격과 위상>(2, 3), <일제강점기 제도권 문학교육>, <근대 독본문화사 연구 서설>, ≪이문구 문학의 전통과 근대≫, ≪근대 국어교과서를 읽는다≫(공저) 등이 있다.



[ 엮은이 ] 문혜윤(文惠允)


고려대학교 국어국문학과, 동 대학원 졸업(문학박사)

현재 고려대학교 강사

주요 논저로 <문예독본류와 한글 문체의 형성>, <조선어/한국어 문장론과 문학의 위상>, <조선어 문학의 역사 만들기와 ‘강화(講話)’로서의 ≪문장≫>, <한자/한자어의 조선문학적 존재 방식>, ≪문학어의 근대≫, ≪근대 국어교과서를 읽는다≫(공저) 등이 있다.



[도서명] 한글독본(鄭寅承 編)

[총서명] 근대독본총서 8

[엮은이] 구자황 문혜윤

신국판(152×224) / 220쪽 / 값 16,000원

발행일 2015년 06월 30일

ISBN 978-89-5996-466-6 94700/ 978-89-5996-135-1 94700(세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