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성의 본질을 아름답게 표현한 시집
내 생애 단 하나뿐인 첫사랑을 고백하다
이 시집은 ‘주제의 함축성’과 ‘단어와 단어들의 시적 표현 방식’, 그런 시어들의 조합으로 기교를 통해 ‘현대사회의 풍경’과 ‘소소한 사랑’, ‘아름다운 자연’을 노래하고 ‘여성성’을 표현하고자 한 정명순 작가의 첫 시집이다.
삶이란 태초부터 애절하게 태어나지 않았을까
1부에는 여성성과 모성의 생명체의 원초적인 내재적 본성이자 자연의 섭리인 여성성이 강하게 드러낸다. <작은 풀꽃>에는 “겨우내 진통하다/이제 양수가 터진다”, <하얗게 피어나는 밤>에서는 “그놈의 손 고쟁이 속으로/쓰으윽 펄럭거리다/하얀 꽃을 피우더라/그놈의 고쟁이 속에 발이 들락날락 하더니만/고쟁이는 침대 밑으로 꺼지고/그놈이 죽었다/그 속에 살고 있다”, <어머니의 눈물>에는 “소금기와 비릿한 냄새/자궁 속의 비릿함과 같아” 등등...
2부와 4부에는 지나간 삶에는 사랑도 그리움도 풍요로움도 되돌릴 수 없지만 돌아올 삶에는 사랑도 그리움도 만남도 풍요로움으로 겹쳐지는 미학적인 풍경으로 형상화한다. <대못 하나>에는 “걸린 못은 나올 줄 몰라 눈동자만 껌벅거린다/대가리는 바닷속에서 흔들거리다/컥 컥컥대다 뱉어낸 것/사랑해”, <옷을 입는 빨랫줄>에는 “이런 것도 만남과 헤어짐이라고 할 수 있을까”, <바지랑대>에는 “내가 향기를 뿌렸나 봐요/바지랑대가 웃어요”, <옥수수>에는 “햇살이 더듬더듬 더듬는 곳마다/이빨이 돋고/헐렁하던 옷이 맞아 지고” 등등...
3부에는 가을을 등지고 겨울을 향해 가는 삶을 한 번 더 짚어보고 물어보는 그런 일상의 내력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물수제비>에는 “물고기들의 한 끼 식사가 되기도 한다”, <칩거에 든 가을>에는 “그대 침묵이 또한 길어지고”, <독>에는 “아버지는 복사꽃으로 자꾸 피어 웃으신다”, <봄을 기다리는 조각보>에는 “마르고 푸석해진 그들이 안타깝기만 합니다”, <밤 열두 시>에는 “죄 많은 하루 인생이여”, <일상의 내력>에는 “네게 속살 드러내듯 오늘의 일정이 하얗게 드러나 있다” 등등...
5부에는 과거의 집착과 미련과 후회와 사랑의 혼돈이 겹쳐지는 현재형으로 이끌어간다. <어딘가 있을 거야>에는 “있을 거야/거기 어딘가 있을 거야”, <빛을 그리다>에는 “곧 저녁이 여물어 가기 때문이다”, <갱년기와 사춘기>에는 “어떤 슬픔도 슬프지 않은 그런 나이가 있을까”, <토리의 읽기>에는 “토리는 오늘도 일기를 쓸까 말까”, <이끼>에는 “낮잠이라도 불러야 할 것 같다” 등등...
삶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복잡하게 얽혀 살다 보니 시를 쓴다는 것이 사치스러울 때가 있다. 시를 쓴다는 것이 사치가 아니라, 작가에게는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는 것만이 자신을 생산해내는 하나의 도구일 것이다. 작가는 이 시집을 통해 작가의 삶에 진솔함을 담아 시적으로 형상화하지 않았나 싶다. 보는 것만이 다가 아니라 그 너머의 본질이 있다는 것을 작가는 말하고 싶었던 것이다. 시의 제목도 시의 문장 속에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은 것, 끝 문장도 마찬가지다.
[ 책 속으로 ]
열세 살 딸아이가 아무 일도 아닌데
큰일이라도 난 듯 바락바락 대든다
붉은 자두 같은 얼굴로
빨간 언어들을 내뱉는다
사춘기도 아닌 내가 필사적으로 딱딱한 욕설 같은
언어를 내뱉는다
나는 따끈따끈하게 썩어가는 자두와 같이
나와 딸아이는 감기를 앓듯
순간순간 열이 나고 우울함으로
내 편은 일도 없는 것같이
속수무책인 날
입맛도 기분도 없었을 터
사춘기와 갱년기는
한 무더기 썩는 자두의 냄새 같은 것일까?
사춘기와 갱년기는 사촌 간이다
갱년기 폐경기 다 지나
어떤 슬픔도 슬프지 않는 그런 나이가 있을까
―<갱년기와 사춘기>(91쪽)
[ 시인의 말 ]
내 안의 당신을 오래도록 사랑하기 위해 스스로 가두어 놓았다. 이것은 사랑인가. 집착인가. 이제 펜 끝의 두려움을 푸른 나무껍질 살갗에 제 몸 하나 벗어 놓은 매미처럼 두려움 하나 벗어 놓는다. 내 생애 단 하나뿐인 첫사랑을 고백한다.
[ 출판사 서평 ]
이 책의 제목을 정하는 데 많은 시간이 걸렸다. ‘시간의 바깥’으로 정했다가 가수 아이유의 노래 ‘시간의 바깥’이 검색이 되어 난감했다. ‘그럼에도 시집 제목을 ≪시간의 바깥≫으로 해야 한다’, ‘아니다. 바꿔야 한다’ 하며 양론이 분분했다. 지은이와 편찬위원 간의 설왕설래가 며칠 지속되었다. 불편한 마음을 숨길 수 없었던 터라 마음 고생들 하셨으리라 생각된다.
결국 이 시집의 제목은 ≪물 속의 혀≫로 결정되었다. 이 시를 다시금 되뇌어보니 이 시 <물 속의 혀>는 독자들의 머리를 두둘길 것이며, 가슴 뛰게 할 것을 확신한다.
우리 삶 속에서 물은 인간에게서는 없어서는 안 된다. 인간이 물을 느끼는 가장 섬세한 기관이 바로 혀이기 때문이다. 정명순 작가는 이러한 혀의 느낌과 움직임을 시로 섬세하게 표현해 낸다. 이 시는 “내 세상 속에 물들을/혀 안으로 끌어안고 싶다”, “소리치는 혀들이 후두둑후두둑 떨어진다/혀 속의 풀내음이 비릿하게 젖어나온다”로 시작과 끝을 맺는다. 혀는 맛을 느끼는 인간의 기관이다. 그런데 ‘물’이라는 것은 ‘무색무미하다’고 표현하듯이 ‘없음(無)’을 대표한다. 작가는 시를 통해 ‘없음’을 ‘있음’으로 바꿔놓는다.
독자를 통해 정명순 작가의 시가 읽혀지기를 소망하면서 출판사의 변을 마친다.
[ 차례 ]
매화
제1부
감자꽃/ 꽃집/ 허수아비/ 작은 풀꽃/ 오월의 독백/ 하얗게 피어나는 밤/ 넋두리/ 병원 앞/ 몫/ 어머니의 눈물/ 보랏빛 입술 자국/ 카네이션/ 고독한 그날/ 투명한 꽃잎들/ 이상한 날/ 풀꽃
제2부
대못 하나/ 시간의 바깥/ 옷을 입는 빨랫줄/ 바지랑대/ 옥수수/ 웃음을 물고 간 새/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 부표/ 가시, 가시/ 이 하나의 고요/ 가을 산행/ 소란스러운 봄/ 검은 고양이/ 쓸쓸함을 말하다/ 절구통/ 너를 몰라서
제3부
솜사탕/ 물수제비/ 차나무의 차 잎들/ 칩거에 든 가을/ 붉은 대추 하나/ 독/ 봄을 기다리는 조각보/ 비틀거리는 잠꼬대/ 초여름 밤/ 배추의 일기/ 밤 열두 시/ 금 붓꽃/ 세상살이/ 걷는 이유/ 일상의 내력/ 소환되던 그날들/ 아름다운 꿈
제4부
물 속의 혀/ 밤에 걷는 새우/ 민들레의 씨방/ 긴 여정/ 작은 섬/ 손가락이 아파요/ 비빔밥/ 만나서 놀았습니다/ 피에 젖은 입술들/ 가끔은 네가 생각날 때/ 흥정하는 하루/ 살구 향 번지는 그 속에/ 풀밭에서 놀다/ 수상한 걸레/ 아슴아슴한 사랑/ 형상 기억 합금
제5부
어딘가 있을 거야/ 빛을 그리다/ 미열의 화병/ 자물쇠에 잠긴 우울/ 갱년기와 사춘기/ 능소화/ 시의 옷을 벗지 않는 밤/ 한 키만큼 하얗다/ 그날이었어/ 표정의 그림자를 훔친다/ 그런 날의 저녁/ 빈 곳을 따라/ 이끼/ 토리의일기
[인터뷰] 늦은 밤 시를 만나던, 간혹 신을 만나던 기쁨
[ 지은이 정명순 ]
강원도 정선군 천포리에서 태어났다. 2020년 10월 서울 시인대학 제10회 신인상 수상 및 <무언의 약속> 등 3편을 발표하면서 등단했다. 2019년부터 전주 ‘문학의 숲’ 동아리에서 부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현재 시흥 ‘배곧 문학회’ 창립준비위원회에서 일하고 있다.
[도서명] 물 속의 혀
[시리즈명] 예서의시021
[지은이] 정명순
[펴낸곳] 예서
변형국판(128×210) / 120쪽 / 값 10,000원
발행일 2022년 09월 20일
ISBN 979-11-91938-21-0 03810
분야: 문학 >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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